미래 과학자들의 두뇌 올림픽 ‘국제청소년물리토너먼트’ 열려

  • 입력 2007년 6월 29일 03시 01분


정해진 반론 시간은 단 3분. 현재 팀의 점수는 7, 8등. 3등 안에 들어야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다.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래도 자신은 있다.

3분이 3초처럼 훌쩍 지났다. 드디어 점수가 발표된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영어 토론에서 미국 팀을 이긴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 한 번의 반론으로 팀이 2등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7월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국제청소년물리토너먼트대회(IYPT)에 한국대표팀으로 참가했던 김수경(미국 프린스턴대 입학 예정) 씨는 당시의 짜릿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 씨는 외국에서 산 적이 없는 ‘토종’ 한국 학생이다.

○ 협동과 토론의 정면승부

IYPT는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청소년들이 해답이 명확하지 않은 17개의 물리학 문제를 1년간 연구한 결과를 놓고 영어로 토론을 벌이는 독특한 형식의 대회다. 한 팀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 질문과 반론, 평론이 이어진다.

“젖은 걸레로 바닥을 밀면 마른 걸레보다 힘이 더 들잖아요. 그런데 걸레가 아예 물에 흠뻑 젖어 있으면 오히려 쉽게 밀 수 있어요. 이때 힘의 변화를 결정하는 요소를 찾아내는 게 결승전 문제였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 씨와 4명의 팀원은 1년 내내 걸레를 들고 살다시피 했다. 결국 걸레가 머금은 물의 양, 천의 재질과 수분 흡수율, 걸레를 밀 때 드는 힘의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결승전 날, 외국 팀의 반론에도 막힘없이 답한 김 씨 팀은 당당히 은상을 받았다.

2005년 7월 스위스에서 열린 IYPT에서 동상을 받은 윤종민(미국 코넬대 입학 예정) 씨는 “문제를 처음 받았을 땐 정말 막막했지만 친구들과 밤새워 논문을 읽고 실험하면서 답을 찾아갔다”며 “덕분에 연구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는 습관도 생겼다”고 말했다.

“개수대에서 물을 틀면 물줄기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원형으로 퍼져 나가요. 반지름이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물이 솟구치면서 수위가 높아지죠.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이 물과 바닥과의 마찰력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외국 팀의 반론은 생각보다 엉성했어요. 그때 ‘이겼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 실력 갖춘 물리학도 배출의 산실

두 사람은 7월 5일부터 6박 7일 동안 경원대에서 열리는 제20회 IYPT에 다시 참가한다. 이번에는 자원봉사자 자격이다. 토론 시간을 재는 ‘타임 키퍼’ 역할을 맡았다. 26개국 3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에 한국 팀은 두 팀. 한국과학영재학교와 경기과학고의 공동 팀(지도 인천대 최성을 교수)과 민족사관고 팀(지도 서울대 전동렬 교수)이다.

토론을 하다 보면 흥분해서 말이 빨라지고 억양이 격해지기도 한다. 답변이 막히면 울며 뛰쳐나가는 학생도 있다. 김 씨는 “침착하고 정중하게, 또박또박 논리를 전달하는 게 주도권을 잡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 토론 예절을 어기면 가차 없이 감점이다.

이번 대회 한국 심사위원단장 서울대 권숙일 명예교수는 “고생해서 얻은 연구 결과를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해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라며 “앞으로도 물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실무위원장 인천대 권명회 교수는 “학생들의 문제 해결 과정은 전문 연구원 못지않다”며 “지금까지 IYPT에서 상을 탄 한국 학생 25명 중 23명이 이공계로 진학했고 대부분 외국 명문대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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