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항암제’ 신약 개발하기도 전에 발표부터 ‘덜컥’

  • 입력 2006년 9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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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성분의 항암제가 나온다면서요? 마지막 소원이니 한번만 치료받게 해 주세요.” 새로운 ‘항암제’가 개발된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은 오히려 괴롭다. 개발이 진행 중이라는 항암제 대부분이 아직 치료에 활용할 만한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의 한 전문의는 “절박한 암 환자들에게 이런 현실을 설명하면 크게 낙담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코스닥시장에서는 A제약과 B제약이 나란히 상한가를 기록했다. A제약은 닷새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75%가 올랐다. 이 회사 주식은 이후 ‘이상 급등 종목’으로 지정됐다.

이들 회사의 주가가 크게 오른 건 ‘항암제 개발’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최근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등의 항암제 개발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제약업계 전문가들은 “동물실험에서 약효를 보인 물질이라도 약으로 개발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했다.

○ 제약사 주가 잇단 급등

A제약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신개념 항암물질 기술을 이전받았다”는 취지의 공시를 띄웠다. 이 기술은 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특정 물질(RHOB)을 증가시켜 암세포를 치료하는 항암물질(RHOX)을 만드는 것. 동물실험 결과에서도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공격하면서도 체중 감소와 같은 부작용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B제약은 같은 날 모 대학 의약연구센터가 ‘봄맞이꽃’에서 추출한 ‘천연 항암제’의 개발권을 이 연구센터로부터 사들였다고 공시했다.

○ 치료효과 입증 안 된 경우 많아

중견 제약사인 C제약도 이달 초 바이오벤처 기업과 함께 줄기세포를 이용한 암 치료제의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다른 사람의 제대혈에서 암세포를 공격하는 ‘자연살해 세포’를 분화 증식시켜 암을 치료한다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해 서울대 의대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타인의 제대혈을 이용한 치료법의 효과는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입증되지 못했다”며 “한마디로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도 “타인의 제대혈을 암 치료에 활용하는 연구는 초기 단계”라며 “안전성 등의 문제로 국내에서 임상시험이 허가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 약효물질서 신약까진 산 넘어 산

전문가들은 동물실험에서 치료 효과가 입증된 물질이라도 사람을 대상으로 독성, 부작용, 기존 약과의 효과 비교 등을 거쳐 신약으로 나오려면 5∼10년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유일한 항암제인 SK케미칼의 ‘선플라’가 약으로 개발되는 데는 약 8년이 걸렸다.

코오롱그룹이 관절염을 치료하는 물질로 2001년 미국 특허를 취득한 ‘티슈진-C’는 올해 7월에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임상시험 허가를 받았다.

서울대 의대 약리과 장인진 교수는 “학계에선 신약의 가능성이 있는 원료물질 가운데 임상시험을 거쳐 약으로 개발되는 것은 1만 개 중 1개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허 교수는 “매년 암으로 죽는 6만5000여 명은 마지막으로 무엇이든 시도해 본다”며 “임상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은 결과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그들에게 혼란만 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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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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