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무실 분위기의 벽지를 사는 데 25원, 할아버지의 애창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사는 데 500원을 썼다.
재원이가 꾸며 드린 할아버지 방은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 가상공간 속의 방이다.
재원이네 가족은 지난해 5월 한 인터넷 사이트가 제공하는 가상 가족주택을 ‘분양’받았다. 이곳에는 실제 주택처럼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는 거실과 각자의 방이 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재원이네와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곳에서 매일 만나 대화를 한다. 대화할 때는 이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메신저 서비스나 무료 화상 통화를 이용한다.
요즘 이러한 가족 중심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재원이네 가족이 분양받은 인터넷 가족주택만 해도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20여만 가족이 입주했다.
가상 가족주택을 제공하는 ‘유패밀리’, 가족 단위로 독립된 도메인(인터넷 주소)을 제공하는 ‘씨넷’, 무료 가족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하는 ‘효도하자닷컴’ 등 5, 6개 사이트가 있다.
이들 사이트는 개인이 아닌 가족 단위로 가입해 활동한다.
기존 카페나 커뮤니티 사이트처럼 가족사진이나 게시물, 일정 등을 공유할 수 있고 메신저나 쪽지, 인터넷 화상전화를 이용해 연락할 수도 있다.
개인별로 독립된 방도 있어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처럼 벽지 및 책상 등 가상 아이템을 구입해 방을 꾸밀 수 있다. 처음엔 컴퓨터 키보드가 익숙하지 않아 10초면 끝날 간단한 인사를 하는 데 몇 분씩 걸리던 윤 씨도 지금은 이 가상 가족주택을 방문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는 “가족 간의 정(情)이란 것이 대화를 통해 쌓이고 돈독해지는 것인데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그게 쉽게 되지 않았다”며 “채팅이건 문자메시지건 대화의 물꼬를 트고 자주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원이네 가족이 격주로 만드는 가족 신문은 인터넷을 통해 미국, 호주 등에 사는 친척과 친구 60여 가구에 배달된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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