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물의 가면' 글 전문

  • 입력 2004년 8월 25일 15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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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서프라이즈, 서프인 - 서프를 떠나며 드리는 글 ▼

그제(8월 20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가 조금 지날 때까지, 서울 여의도에 있는 ‘박하사탕’이란 곳에서 약 2시간이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프라이즈의 서영석 대표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미팅을 요청했던 이유는, 서대표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만남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밝히게 되기까지, 몇 가지 생각들을 했습니다. 우선, 제가 서대표에게 갖고 있었던 의문의 답은, 나만 알면 되는 개인적 사안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둘째, 서대표 개인은 개인이지만, 그가 만든 서프라이즈라는 공간 또한 개인의 사유물인가에 대한 강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셋째, 이 시점에서 우리는 개혁과 개혁을 지향하는 시민들의 지향점을 한 번쯤 돌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염원이 있었습니다.

여러 서프인들이 알고 있는 서대표 개인의 에피소드 때문에 만나기를 청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미, 그 일과 관련하여 사과와 해명을 했으며, 대표직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없었으면 좋았을 에피소드지만, 그 문제라면 최소한 그를 과도하게 공격하고 괴롭히는 사람들과 같은 편에 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의 개혁 진지를 구축하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그의 에피소드는 조중동 지면의 어느 구석에도 오르지 못할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서대표는, 서프라이즈를 사단법인화 하고, 개혁을 지지하는 독자들에게 돌려 줄 계획임을 천명했으며, 일련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말했습니다. 해프닝도 있었고, 도덕성을 둘러 싼 내부 논쟁도 있었던 것을 압니다. 와중에, 제 글의 대상이 오인되어 논란거리가 된 일도 두어 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제가 서대표를 만나 묻고 싶었던 것과 무관합니다.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개인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그에 대해 들었던 이해할 수 없는 말의 진위, 또는 본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데일리서프와 관련, 서대표가 참여 정부나 개혁 지지세력에게, 청탁건과 비교될 수 없는 상처를 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누차 들었습니다. 기자 출신의 특성이나 개인적 도덕성 등을 언급한 사람도 있고, 그가 이미 개혁 진영에 일정부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런 말들을 액면 그대로 믿을 근거가 없었으며, 서프를 만든 사람 자신도, 시대적 변화에 따른 진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무시한 비판이거나 예측은 아닐까 생각하는 면도 있었습니다.

서프 내부 논쟁 (서대표 문제 + 노짱토론방 게시판 관리나 해우소 문제, 편집의 주체나 방향성 등)이 다소 소강 국면에 들어 간 것으로 보이는 최근, 제게 중요한 문제로 보인 것은 서프라이즈의 구심점 문제였습니다. 뚜렷한 캡틴이 없는 배가 표류의 양상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평소, 서프의 기능과 개혁을 위한 지원능력의 확충을 원했던 저에게, 이런 상태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서대표를 믿었고, 또한 사공이 너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격언을 믿었습니다.

서프에 글을 올리고, 어느 정도 알려진 닉네임을 쓴다고, 나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지도 않았고, 나서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었습니다. 괜히 장지갑 같은 인간의 예측을 옳았던 것으로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제가 곧 서프의 주주가 되거나 운영진에 가담할 것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자들은 자기 경험 안에서 모든 사람을 판단하고 단정할 수 있는 기이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다 읽은 다음,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사람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서대표를 만나 확인할 것이 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서대표가 서프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노빠였던 적도 없고, 노빠가 아니다. ~~~개혁만 팔아 먹어도 10년은 잘 먹고 살 수 있다” 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의 입장이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서프라는 공간의 의미, 그리고 그것을 만들고 키워온 사람에 대한 혼자만의 상상은 여지없이 깨져야 하는 말입니다. 신뢰가 장난이 아니라면, 신뢰에는 적정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서영석이란 사람에 대한 나의 개인적 상상과 판단의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있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신뢰의 중요한 근거가 도전 받았고, 이 점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대화 =서영석의 도전

약 2 시간에 걸친 대화의 4분의 3 정도는, 서대표가 말하고 저는 들었습니다. 데일리서프 창간을 앞두고 고생이 많을 것이란 생각에, 간단한 위로의 말을 전하며 대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서대표는 너무나 잘 된다는 말로 받았습니다. 청탁 건으로 조중동이 씹어대고 선전을 해주니까, 자신을 정말 정권의 실세, 또는 영향력이 강한 사람으로 오인한 자들이, 너도 나도 나서서 도와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데일리서프 창간 축하 광고도 넘치고, 투자를 원하는 사람들을 제지하고 대기 시켜야 할 정도랍니다.

그는 이러한 세태를 한탄하거나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의를 일으켰던 자신의 실수가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것만을, 즐겁게 강조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고, 잘 해왔으며, 잘 될 것이란 말을 길게 설명했습니다. 데일리서프와 관련, 필생의 사업일 테니 하고 운을 떼자, 그는 데일리서프가 그에게 필생의 사업이 아니라고 정정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 하며 마음껏 즐기며 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순간, 저의 쫀쫀함과 비추어 그의 대인다운 풍모가 압도되어 왔습니다. 이틀 전에 관람했던 뮤지컬 ‘청년 장준하’의 오프닝 송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가 떠 오르긴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의 농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데일리서프 라는 온라인 매체의 성공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으며, 곧 이어 월간지 창간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년 말쯤에는 일간 종이 신문사의 창업을 계획하고 있음을 말했습니다. 이런 그랜드 마스터 플랜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데일리서프따위를 필생의 사업 운운한 것은 사람을 과소평가한 것이며, 안목의 비천함을 증명한 일입니다.

그는, 주변에서 거액을 투자하고 싶어 하는 재력가들에게, 이러한 플랜의 진행 과정과 타이밍을 맞춰 투자하라고 타이르고 있답니다. 대단한 계획이며, 대단한 포부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조차, 그에게 궁극적 필생의 사업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부러움과 시기의 마음이 생겼었는지, 기억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그의 마스터 플랜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만나자고 한 앤젤 투자가도 아닌 저에게, 그의 말은 다소 공회전 소음처럼 들렸습니다. 그의 마스터 플랜에서 별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는, 서프라이즈에 대해 질문 해야 하는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은 들었지만, 어쩌겠어요. 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물었습니다.

“데일리서프에 서프라이즈가 어느 정도 시너지 효과, 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시는가?” 그의 대답은 “별로 없거나 없을 것으로 본다” 였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정치웹진과 뉴스포탈의 결합이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가 곧 창간할 월간지 등을 위해, 개발하고 띄워 주고자 하는, 조중동에 소외되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지방대 교수” 등과 같은 재야 칼럼니스트 등을 이야기 했습니다.

서프라이즈 논객 정도는 고려의 대상으로 언급조차 하지 않는 그에게 만일 제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면, 한참 민망스러워 질 뻔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들었습니다. “아, 이러니까, 서프라이즈를 독자들에게 돌려준다는 결심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구나”

그가 설명한 온라인 매체 시장과 오프라인 매체 시장에 대한 전문적 설명은 생략하고 싶습니다. 요컨대, 그는 조선일보와 기업 대 기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당찬 도전의식과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아마츄어들이 하는 것이라 망할 것이고, 자신의 조직은 프로들로 짜여 진 것이기에 성공할 것이란 말은, 조중동들도 아마츄어 집단들이라는 소리처럼 들려 반갑기도 했습니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

돌려가며 의중을 타진하는 일에 서툰 사람이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당신을 비판하던 사람을 통해 들은 말이다. 당신이 서프 직원을 모아 놓고, 나는 노빠였던 적도 없고, 노빠도 아니다... 앞으로 개혁만 팔아 먹어도 10년은 잘 먹고 살 수 있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굳이 입밖에 낸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제가 인용한 말을 일체 부인하지 않았으며, 다만 다소 보완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모자라는 기억력이나마 직접화법으로 살려보겠습니다.

“그건 내가 노빠였던 일도 없고, 노빠도 아니기 때문에 한 말이다. 다만, 개혁만 팔아 먹어도 10년은 먹고 산다는 말은, 직원들에게 개혁이 열어 놓은 매체 시장성을 설명하기 위해 한 말이다. 솔직히 노무현도 개혁을 팔아서 대통령 된 것 아니냐... 시대의 흐름을 읽고 이용하여 돈을 버는게 무슨 잘못이나 죄가 되느냐... 난 한 번도 노빠였던 적이 없다. 실제로 이인제 등과 더 친했으며, 바둑도 두고 그랬다.. 노무현은 인간적 약점이 대단히 많은 사람이다..그에 반해, 이회창은 인간적 장점이 대단히 많은 사람이다.. 다만, 시대적 상황이 이회창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고, 노무현은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쓴 글을 읽어봐라... 나는 노무현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다만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것을 이용하거나 돈을 버는 것은 죄가 될 수 없다..노무현의 개혁도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그는 기자들을 잘 대해 주지 않았었고, 내가 정치부 기자를 할 때, 그는 13대에서 낙선하여 몰락해 있었다... 유능한 기자인 내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의 대통령 당선을 필연으로 보고, 서프 독자들에게 정치적 사안들을 한 발 앞서 분석해 준 것이 서프가 클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논객들은 항상 한 두 발짝 뒤늦게 그것을 받아 글을 올렸고, 탄핵이나 총선 등의 큰 이슈가 있어, 서프가 큰 것이다. 지금 그런 이슈가 없으니, 서프 방문자수나 페이지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너무 걱정 마시라”

“서프 게시판의 문제 등은 내가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슈가 없고, 방문자가 줄어들면 알바들이 그만큼 더 날뛰는 것이다. 이제 보선 등의 이슈가 생기면, 해소될 것으로 본다... 편집 등은 지금 한 사람이 맡고 있는데, 내가 간섭하면 일 못한다. 욕을 먹으면 그 사람이 알아 대응하고 해결할 것이다. 너무 걱정 마시라”

질문 하나 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조선일보의 방응모 역시, 그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의 조선일보일 것이다. 만일, 노무현이란 사람의 개혁이 그 반대세력에 의해 끝내 좌절되고 좌초하면, 그때 당신은 어떤 시대의 흐름을 읽을 것인가? “

이에 대해, 서대표는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그건 내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새끼는 귓방맹기를 한 대 갈기고 싶다. 내가 이런 일을 할 때, 그 새끼들은 뭘 했는가 묻고 싶다.”

“조선일보는 망하게 되어 있다. 그 밑바탕부터 흔들리고 있다. 나는 그들과 기업 대 기업으로 붙어 이길 것이다. 조선이 온라인 매체들을 죽이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조선이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제대로 붙을 줄도 모르는 아마츄어들이 하는 짓이라 그렇다. (이하 아마츄어-프로론, 자신의 능력론, 주변의 지원 등등 반복이므로 생략.) “

제 귓방맹이 때릴 생각은 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덧붙여 물었습니다.

“조선이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오마이, 데일리서프 등을 의미함) 자신의 프레임 안으로 포섭해 들이는 것이라고 본다. 끝까지 저항하는 자들에게는 칼질을 할 지 몰라도... 데일리서프는 언론 매체 시장의 스펙트럼에서 어떤 위치를 갖게 될 것으로 보는가?”

“데일리서프는 아마 가장 친노적 성향이 강한 매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매체 시장은 보수가 한 30%, 극좌가 5%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70% 가까운 시장이 무주공산으로 남아 있다...이하 생략”

서프라이즈의 문제에 대해

서대표는 서프를 사단법인으로 변경시키고, 독자에게 돌려 줄 것이라는 아젠다를 이미 공표한 바 있습니다. 저는 이와 관련, 서프가 사단법인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독자나 필진들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구성된 대표 또는 대표들을 개입시키고, 그 과정을 관리하게 하면 어떻겠는가?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서대표는 그 과정을 밟으라고 지시했으며, 자신은 손을 뗀다면 손을 떼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그러한 시원한 답변은 더 이상 큰 신뢰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모두 옮길 수 없으나, 이제까지의 대화로 제가 얻은 판단은, 서대표가 여느 중소기업인 사주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까라면 까라는 식의 누구 못지않은 소유지배적 성향이 강한 경영자로 보였습니다. 재미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이제 그는 개혁이란 시대적 요구를 돈으로 환산하는 유능한 사업가이며, 그러한 사업을 통해 조선과 싸우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단법인의 발기 주주를 자신이 추천할 것임을 시사했으며, 발기주주 가운데 그 동안 서프를 금전적으로 지원했던 사람을 포함할 뜻이 있음을 비쳤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한 독자나 필진의 대표성 또는 과도적 사무국과 같은 제안은, 무책임한 자들에게 그런 일을 맡길 수는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그에게 책임 있는 사람은 다소라도 돈을 후원한 사람이고, 따라서 지금이라도 돈을 내면 발기주주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돈을 후원한 일도 없지만, 서프 사단법인화에 간여할 생각도 없었던 저는, 더 이상 무책임한 발언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싸이트는 없다. 서프라이즈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또 다른 싸이트를 만드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덧붙인 그의 말은 게시판 관리나 편집의 문제점과 관련, 앞으로 나아 질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장시간 한 독자필진과 만나 자신의 속내를 거침없이 토로해 준 시간에 감사하며, 자리를 일어 났습니다.

정리된 입장

먹물의가면은 서영석이란 사람을 알아서 서프라이즈를 찾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노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신뢰하고, 그가 추진하는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그가 싸우는 대상들의 강고하고 광대한 네트워크 그리고 그들의 비열함에 분노하는 한 시민이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서프란 곳이 저와 비슷한 많은 다른 시민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하여, 드나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만들고 키운 이에게 고마움과 존경을 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회랑을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름의 정성과 노력을 담아 몇 개의 쪽지를 걸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회랑에 모이는 사람들이, 노대통령이 앞장선 개혁의 지지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변절을 막는 압력이 되고, 그를 굴복시키려는 자들과는 맞서 싸워 줄 수 있는 시민군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작은 제스쳐에 불과하지만, 한 시민군의 전투 자세를 보여주고도 싶었습니다.

서영석이란 사람의 사상과 인생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도 않으며, 그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그의 업적을 폄하할 생각은 더욱 없습니다. 그가 끝내, 자신이 읽은 시대의 흐름을 지키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의 말처럼, 전투를 위한 진지는 고정된 것도 아니고 수적인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나름의 생활 정치인이고, 그 정치철학이 모두 같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먹물의가면은 오늘 서프라는 회랑과의 인연을 끝내고자 합니다. 김영삼이 씨를 심고, 김대중이 키워, 노무현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개혁이라고 보고 있는 서영석이란 사람의 체취가 베인 곳에 다시 오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맡았던 냄새가 그의 체취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지금의 국면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노무현이라는 우리의 지도자가 어려워 하는 일, 차마 하기 힘든 일을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들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서로의 위안으로 끝나는 곳이 아닌, 개혁이란 시대적 삽질을 미약한 힘이라도 실제 거들 수 있는, 그 어떤 공간을 찾아 떠나겠습니다. 황야로 나서는 한 병정개미의 탈영입니다. 그러나, 저는 확실한 곳에서, 제 몸에 남아 있는 모든 무기들을 어떤 회의도 없이 소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곳은 이 늙은 병정개미가 잠시 인생과 세상, 그리고 그 속의 전투 이야기를 나누었던 행복한 곳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더욱 발전하고 행복한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곳이 한 개혁의 병정개미가 그 존재 의미를 투사하고 전사할 곳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미의 본능적 판단에 대해, 여러 개혁 전사들의 넓은 이해를 구하며,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는 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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