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9·끝>장회익 교수

  • 입력 2003년 8월 31일 17시 25분


21세기형 아인슈타인을 양성하기 위해 녹색대학에 몸담고 있는 장회익 교수. -사진작가 박창민씨
21세기형 아인슈타인을 양성하기 위해 녹색대학에 몸담고 있는 장회익 교수. -사진작가 박창민씨
‘아인슈타인이 되실 분만 오세요!’ 상당히 과감한 표현이다.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 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겠지만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영재 학원의 홍보문구로 여기기 쉽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30여년간 물리학을 가르쳐 온 장회익 교수(65)가 이 말을 했다면 어떨까. 빈 말은 아닐 텐데, 과연 가능한 일일까.

“제가 몸담고 있는 녹색대학의 모토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천재 물리학자를 양성하는 곳은 아니에요. 병든 현대 문명을 치료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의 지적 능력과 삶의 자세, 두 가지를 갖춘 후학을 키우겠다는 뜻입니다.”

올해 초 녹색대학 초대 총장을 맡았던 장 교수의 설명이다. 녹색대학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과학문명을 실현하고자 설립된 국내 최초의 대안 대학이다.

이곳에서 학습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뉴턴과 아인슈타인 정도는 짚고 넘어갈 각오를 가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금 주춤해지는 대목이다. 물리학자 지망생이라면 이런 정도의 각오를 가져야겠지만, 일반 학생으로서는 엄두가 잘 안 난다. 교양수준의 강좌에서 미적분학을 비롯한 수학공식들을 사용해 만유인력법칙이니 상대성이론이니 하는 난해한 이론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에 대한 장 교수의 해법은 명쾌하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나는 거의 도사가 돼 있으니까요.” 30여 년간 대학은 물론 각종 강연장에서 물리학을 ‘쉽게’ 풀어낸 노하우가 쌓여 있기에 그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아인슈타인다운 삶의 자세를 가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혁가로서의 자세를 말합니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학문에서뿐 아니라 세상의 불합리한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정치, 사회에 관한 발언도 많이 했어요. 인류의 평화를 위해 세계정부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점이 한 사례죠.”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지금 태어난다면 아마도 물리학자가 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장 교수는 생각한다. 물리학만을 붙들고 있기에는 너무도 긴박하고 중요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바로 위기에 처한 현대 문명의 생존문제다.

장 교수는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대에서 자리를 잡은 후 생명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에 태양과 지구를 연결하는 하나의 큰 유기적 체계를 생명의 진정한 단위로 파악하는 ‘온생명’ 사상을 정립했다. 이때 자연스럽게 환경이라 불리는 것이 곧 온생명의 ‘몸’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이 자신만 살겠다고 ‘몸’을 해친 결과가 바로 생태계 파괴다. 국내의 굵직한 환경운동에서 장 교수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장 교수는 다시 태어나도 물리학부터 공부하겠다고 할 만큼 물리학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다. 제자들이 전공을 바꾸려 할 때 ‘갈 땐 가더라도 물리학을 쥐고 가라’고 강조한다. 그에게 물리학은 ‘세상에서 여의주에 가장 가까운 보물’이다. 과학의 기초적 사고 틀과 방법론이 세상사를 풀어 가는 데 너무나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인슈타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21세기형 아인슈타인이 돼라”고 권한다. 업적을 많이 내기 위해 과도한 경쟁에만 몰두하면 정작 이 세상을 변화시킬 역량을 기를 수 없다는 것이 녹색스승의 메시지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장회익 교수는▼

1938년 경북 예천군 출생. 초등학교 시절부터 혼자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수학교재를 혼자 소화해냈다. 1961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텍사스대 연구원을 거쳐 1971년부터 올 초까지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3년 3월부터 7월까지 녹색대학 초대 총장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녹색대학의 석좌교수로서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사상을 담은 ‘과학과 메타과학’ ‘삶과 온생명’을 저술한 공로로 제14회 심산상을 수상했다.

△좌우명〓배우고 난 후에야 부족함을 안다(學然後知不足)

△감명 깊게 읽은 책〓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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