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인터넷, '양날의 칼'

  • 입력 2003년 4월 28일 18시 30분


“세종대왕 보기가 부끄럽습니다.”

KT 망관리지원단의 한 관계자는 유해 사이트 데이터베이스(DB) 70만개를 언어별로 분석한 결과를 보고 이같이 말했다. 대부분이 포르노사이트인 유해사이트 DB 중에서 ‘한글’이 영어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은 아무래도 너무했다.

이미 인터넷 공용어로 자리잡은 영어가 83.6%로 1위를 한 것은 이해가 됐지만 사용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한글이 9.5%로 2위를 한 것.

한글은 일본어(2.3%)를 4배 이상 앞섰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주요 언어를 모두 제쳤다. 적어도 사이버 포르노 공간에서만큼은 한글이 ‘국제어’로 등극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올 들어 새로 추가되는 유해 사이트의 45%가 한글이다. 한글포르노가 과거 실적으로는 전체의 10%였지만 미래엔 절반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이버 포르노 공간에서 한글이 국제어로 자리잡기 전부터 한국은 사이버 공간에서는 ‘불량 국가’로 낙인찍혔다. 한글 설명이 붙은 음란성 e메일이 전 세계 사이버 공간을 황폐화시키면서 항의가 끊이지 않았던 것.

불법 스팸메일을 단속하고 있는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스팸대응팀에 작년에 접수된 외국인들의 신고메일은 6만1000여통. 올해는 증가 속도가 더 가파르다. 작년부터 ‘한글포르노 공해’에 대한 외국인의 항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문자인 한글이 국제사회에서 이처럼 ‘저속한 언어’로 간주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이는 한민족 전체에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부나 관련 업체에서 근본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인터넷의 기술적인 특성상 이 같은 유해 사이트를 효과적으로 단속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느끼는 위기의식이 불감증에 걸린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동아일보가 올해 창간 기념 사업으로 ‘건강한 인터넷’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터넷은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그러나 인터넷 자체에 철학이나 방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잘 드는, 날이 선 칼과 같다. 누가, 어떤 목적을 위해 쓰느냐에 따라 유익할 수도, 유해할 수도 있다.

인터넷 사용자를 네티즌이라 부른다. ‘망(net)’과 ‘시민(citizen)’이 결합된 말이다. 시민은 권리는 물론 절제와 규범, 책임을 자각하는 주체다. 시퍼런 칼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절제와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공종식 경제부 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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