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③]황우석 서울대 교수

  • 입력 2002년 9월 15일 17시 17분


한국 첫 복제소 '영롱이'를 태어나게 한 황우석 교수. - 사진 이만홍 작가
한국 첫 복제소 '영롱이'를 태어나게 한 황우석 교수. - 사진 이만홍 작가
“생명과학은 과학을 위한 과학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학문입니다. 부모 형제가 죽어 가는데 비가 온다고, 몸이 좀 힘들다고 연구를 게을리 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과학의 보람은 돈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생명의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49)는 1999년 2월 국내 최초로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키면서 단숨에 스타 과학자로 떠올랐다. 황 교수는 영롱이에 이어 한우 ‘진이’ 등 복제소를 잇따라 출산시켰고, 최근에는 유전자를 바꾼 복제돼지를 선보였다. 그는 현재 장기이식용 복제돼지, 백두산 호랑이 복제 등을 연구하며 한국의 복제동물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황 교수의 ‘생명 사랑’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소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도시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방학에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어머니의 발목을 보니 새빨갰어요. 소에 먹일 꼴을 베다 거머리가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은 것이지요.”

황 교수는 그날 ‘어머니가 이렇게 힘들게 소를 키우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어린 시절부터 소와 함께 지내 소에 대한 경외심까지 품고 있던 터여서 소는 그의 운명이라고 느꼈다(그는 자신의 이름도 ‘황우’ 아니냐며 웃었다). 고3때 담임 선생님은 의대를 권했지만 그는 주저없이 수의학과를 선택했다. 황 교수는 몇 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농촌을 돌아다니며 농민들의 소를 돌봤다. 그를 잘 아는 농민들은 황 교수를 ‘소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황 교수는 자신의 동물 복제 기술이 우리 소에 새로운 힘을 주기를 기대한다.

“소는 5000년 동안 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한 동물입니다. 솔직히 우리 축산업은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세계에서 가장 원유값이 비싼 곳이 한국입니다. 그러나 생명과학을 이용해 기능성 우유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 소가 설 자리가 다시 생깁니다.”

소와 농민에 대한 황 교수의 사랑은 요즘에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향해 있다. 그는 한달전 기자에게 장기이식용 복제돼지가 7∼10년 정도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최근 “더 빨리 해야겠다”며 서두르고 있다. 복제돼지 출산을 발표한 뒤 서울의대에서 공동 연구 요청이 왔단다. 그곳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들의 실태를 들으니 쉬고 있을 틈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황 교수 스스로 죽을 뻔한 병(병명을 밝히지 않았다)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경험이 있어 환자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더 애틋하다.

황 교수는 과학자로는 드물게 대중 활동이 활발하다. 5년 째 하고 있는 서울과학관 특강을 비롯해 웬만한 강연 요청은 거절하지 않는다. “너무 나선다”는 일부의 비판에 그는 “과학자의 사회적 의무”라고 일축한다.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꿈을 키워주고, 대중에게 과학을 제대로 이해시키는 일은 연구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황 교수는 지금도 복제돼지와 호랑이에 대한 인공수정은 자신이 직접 다 할 정도로 실험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얼마전 집안도 훌륭하고 성적도 뛰어난 중학생 4명이 실험실을 찾아왔어요. 생명을 살리는 생명과학자의 보람에 대해 이야기해 줬더니 법관이나 의사를 희망하던 그들이 모두 생명과학자가 되겠다고 이메일을 보내왔어요. 이공계 기피를 극복하려면 과학자들에 대한 대우도 개선해야겠지만 청소년들에게 과학의 의미와 보람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어야 합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황우석 교수는▼

53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대전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수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뒤 서울대에 교수로 채용될 예정이었으나 대학 내 갈등으로 뜻하지 않게 ‘실업자’가 됐다.

실망한 황 교수는 일본 훗카이도대에 연구원으로 가서 인공임신 기술을 익혔고, 이 경험이 훗날 복제소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86년 귀국해 현재까지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황 교수는 “일이 취미”라고 할 정도로 일에 몰두하는 성격이다. 결혼하고 가족과 한번도 놀러간 적이 없다고 하는데 올해 처음으로 부인이 “우리도 물놀이 한번 가자”고 해 무척 미안했다고 털어놨다. 매일 새벽 단전호흡을 거르지 않고, 한 달에 한번씩 예불을 드린다.

2000년 국회과학기술상, 2001년 세종문화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공동기획:동아일보·한국과학문화재단·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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