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게놈 세계최고 권위자 英 설스턴 경에게 듣는다

  • 입력 2002년 8월 4일 18시 12분


존 설스턴 경(왼쪽)과 유향숙 박사
존 설스턴 경(왼쪽)과 유향숙 박사
《‘복제인간은 과연 탄생할까. 유전자 치료로 난치병을 고칠 수 있을까.’

지난해 2월12일 미국과 영국 등 6개국 컨소시엄인 인간게놈프로젝트(HGP) 연구팀과 미국의 벤처기업인 셀레라 지노믹스사가 인간의 유전정보를 해독한 게놈지도를 완성했다고 발표한 이후 이같은 의문과 기대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날은 과학계 및 의료계에서 인간의 달 착륙에 맞먹는 역사적인 날로 평가된다. 최근 인간복제 실험이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게놈프로젝트 영국 책임자였던 존 설스턴 경(卿)이 3일 방한했다.

그는 셀레라사의 크레이크 벤터 박사와 함께 게놈 관련 연구에서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영국문화원과 한국과학문화재단 KBS가 주최하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8월의 크리스마스 강연’을 위해 내한했다. 설스턴 경의 연구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유향숙(兪香淑·인간유전체연구사업단장·52·여) 박사가 4일 오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그와 특별대담을 가졌다.》

▽유향숙 박사〓인간 게놈프로젝트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현재 개별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각각의 유전자가 어떤 구조를 갖고 있고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를 밝히려는 것이다. 인간 게놈프로젝트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난치병 등을 치료하는 데 획기적 발전이 있을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흥분했다. 게놈프로젝트 결과는 의학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존 설스턴 경〓인류는 그동안 질병을 ‘따라다니기만’ 했다. 이제는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유전적 변종을 찾아내 병을 진단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유전적 원인 때문에 생긴 암이라면 유전자 진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말기 암 환자에게도 희망을 줄 수가 있다. 항생제에 내성을 보여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관련 유전자를 찾아내 원인을 밝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고장난 유전자를 고쳐 병을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 시대가 열릴 것이다. 하지만 인간 게놈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인류에 대한 기본자료를 만든 것이고 생명을 이해하는 데 일보 진전했다는 것이다.

▽유 박사〓유전 정보를 미리 안다면 자신이 원하는 아기를 낳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또 자녀의 키와 지능 등을 유전자 검사로 미리 파악하려는 부모도 많다. ‘유전자 만능주의’에 빠져 환경적인 영향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있다.

▽설스턴 경〓유전자 조작을 통해 ‘디자이너 베이비(맞춤 아기)’를 출산하려는 시도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재로서는 가능하지도 않다. ‘겸상적혈구빈혈증’이라는 질환을 예로 들어보자. 이 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양쪽 부모에게 모두 받았을 때는 빈혈로 숨지기 쉽다. 그러나 한쪽으로부터만 받으면 말라리아에 저항력을 갖는다. 이처럼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춤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인간의 몸은 수만개의 유전자가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연주자 몇 명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유전자 검사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올바른 양육이다. ‘음악 유전자’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음악가로 키우기 위해 태어날 아기에게 음악 유전자를 집어넣었다고 그 아이가 자라서 훌륭한 음악가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훌륭한 음악가가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자녀를 망치기 쉽다. 영국에서는 맏아이의 지능이 다른 아이보다 10%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맏아이를 세심하게 키우기 때문이다.

▽유 박사〓인간 복제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설스턴 경〓대답은 간단하다. 결코 안 된다. 양과 고양이, 소 등 많은 동물이 복제실험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복제 동물 100마리를 만들면 건강한 동물은 1, 2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을 대상으로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과학적으로 가능하다 치더라도 윤리적으로 절대 안 된다.

똑같은 사람이 생기지도 않는다. 복제 인간은 ‘먼 훗날의 나’를 만드는 것과 같다. 가령 30세의 남성을 복제한 인간이 태어났다면 이는 사실상 ‘복제 인간’이 아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환경이 다르다면 사람도 달라진다. 머릿속에 다른 지식과 경험이 있는데 어떻게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유 박사〓유전 정보를 미리 아는 것이 좋은가. 유전 정보를 보험회사에서 안다면 일부 열등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보험 가입을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는 일자리를 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유전 정보를 공개했을 때 열등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차별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당연히 유전 정보 공개 범위에 대한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설스턴 경〓이건 기본적으로 인권의 문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 하고 유출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100여년 전 영국 여성은 참정권이 없었다. 생물학적인 원인을 이유로 참으로 우스운 차별을 한 것이다. 열등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앞으로 또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유 박사〓한국에서도 유전 정보 공개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앞으로 이런 윤리적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갖출 세계적인 기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설스턴 경〓많은 나라가 고민하고 있는데 문제는 미국의 태도다. 질병치료를 위한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는 국립보건원(NIH)의 지침으로 제한하면서 유전 정보를 이용해 상업화하려는 의도를 가진 기업인에게는 관대하다. 장기적으로 세계보건기구(WHO) 등 범세계적인 기구가 나서서 합리적인 지침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유 박사〓과학자들은 실험실 연구에 능하다. 그러나 자신의 연구결과를 대중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데 소홀했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이 과학은 어렵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또 용어 자체가 어려워 일반인이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2월 인간 게놈프로젝트의 연구결과가 발표됐으나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진행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과학자들이 어떻게 하면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설스턴 경〓과학계의 연구성과를 대중에게 알려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와 의사가 자신이 하는 작은 부분의 일에만 집착해 무엇을 설명하려고 든다. 사람들은 이 때문에 어렵게 생각한다. 자신의 연구결과를 큰 틀 안에서 볼 때 어느 부분에 있는 것인지, 그 틀을 유지하고 변화시키는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부터 접근한다면 아마 일반인도 현재보다 더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강연’도 일반인에게 알기 쉽게 과학의 연구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영국왕립연구소가 진행하는 이 강연은 마이클 패러데이라는 유명한 영국의 물리학자가 1826년에 처음 시작한 것으로 올해가 175회째다. 영국에서는 강연을 미리 녹화한 뒤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TV 프로그램으로 방영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듬해 여름에 진행하고 있다. 주 대상인 학생들이 자유롭게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여름방학 기간에 강연을 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지난해에 처음 시작됐고 앞으로 계속할 예정이다.

▽유 박사〓한국에서는 지난해부터 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가 생명윤리에 관한 법률을 각각 준비해왔고 최근 두 부처간 합의가 끝나 관련 법률이 9월 정기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종교계와 윤리학자 사이에서는 인간 배아 연구에 대해 반대의견이 많다. 어떻게 해결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설스턴 경〓연구 주제나 범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은 인정해야 한다. 또한 나라마다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시각과 원칙은 달라질 수 없다. 그것은 인간 복제를 금지하는 것이며 유전 정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밖의 문제는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간에 합의를 통해 해결해나가야 한다. 이 논의 과정에서 사회가 성숙할 수 있고 이후에 생길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도 있다.

정리〓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존 설스턴 경(卿·60)▼

△1942년 출생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영국 최고 책임자

△영국 케임브리지 생거센터 초대 소장

△미국 캘리포니아 서크연구소 연구원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동 대학원 졸업. 박사학위 취득

▼유향숙(兪香淑·52) 박사▼

△1950년 출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21세기 프론티어 인간유전체연구사업단장

△대통령 자문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

△연세대 의대 유전공학연구소 자문위원

△서울대 약대, 미국 캘리포니아대 석사(생화학), 피츠버그대 박사(분자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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