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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3월 10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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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환자인 최모씨(55)는 하루에 세 번씩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다. 최씨는 곧 인슐린 주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화이자사와 릴리사 등에서 흡입용 인슐린제제를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국내 제약회사나 바이오 업체로부터 각광을 받는 연구분야로 약물전달시스템(DDS)이 뜨고 있다. DDS는 기존 약을 변형해 쓰기 편하면서도 부작용을 줄이고 체내에 효과적으로 흡수되도록 연구하는 분야.
DDS는 70년대 미국에서 먹는 멀미약 대신 피부에 붙이는 패치제가 처음 개발된 이후 활발한 연구가 시작됐다. 국내에선 90년대 들어 매년 4, 5건의 DDS 제품이 나오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의과학연구센터 정서영 박사는 “신약을 개발 할 경우 12년 이상의 기간과 6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며 “반면 기존 약을 이용한 DDS 연구는 3∼5년에 신약개발비의 10분의 1 정도 비용으로 새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약방출을 느리게〓고혈압약은 80년대만 하더라도 하루에 세 번 먹는 게 보통이었지만 지금은 대개 하루에 한 번 먹는다. 이는 약이 체내로 방출되는 속도를 늦춤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태평양제약은 현재 임상시험 중인 축농증 치료제로 코속에 넣는 주사제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주사제도 한번 투약으로 2주 동안 약효가 지속되는 것으로 매일 먹어야 하는 기존 항생제의 불편을 없앴다.
피부를 통해 지속적으로 약을 투여할 수 있는 패치도 최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바이오 업체인 아이큐어(대표 최영권·www.icure.co.kr)은 3일간 약효가 지속되는 천식치료 패치제와 1주일 동안 약효가 지속되는 골다공증 치료 패치제를 최근 개발했다. 아이큐어는 약 성분이 피부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피부 투과 촉진제’를 개발했기 때문에 이들 패치제가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디디에스텍(대표 장시영·ddstech.co.kr)은 한번 투여하면 15∼30일간 효과가 지속되는 천식 치료 주사제를 개발 중이다.
▽흡수률을 높게〓어떤 약을 주사제로 투약하는 이유는 복용약으로 먹어서는 위장관에서 약성분이 흡수되는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DDS연구로 흡수률을 높이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한미약품은 주사제인 항암제 파클리탁셀을 가공해 먹는 항암제로 개발했다. 주사제 성분을 마이크로 에멀션기술로 먼지 알갱이보다 잘게 쪼갠 뒤 장속에서 잘 흡수되도록 특수물질을 섞었다.
이와는 달리 항암제 파클리탁셀에 특수물질(고분자 물질)을 결합시켜 부작용을 줄이고 흡수율을 높인 항암제가 최근 임상시험 중이다.
삼양사는 항암제 ‘제넥솔-PM’을 고분자 물질과 결합시켜 물에 녹는 탁솔을 만들었다. 파클리탁셀 자체는 물에 녹지 않아 그동안 용해보조제를 함께 사용했는데 이 보조제가 환자들에게 독성을 보였다.
▽표적만 찾아간다〓기존 약은 환부에만 그치지 않고 온몸에 작용하기 때문에 치료시 부작용이 따랐다.
DDS전문 바이오업체인 파이크(대표 윤준·http://www.pike.co.kr)는 최근 유방암 직장암 피부암(흑색종)만 골라 찾아가는 새로운 단백질을 찾았다고 밝혔다.
파이크는 “이 단백질을 기존 항암제와 결합시키면 특정 암세포만 찾아가므로 크루즈 미사일과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양사는 대장에서만 약이 흡수되는 ‘대장 표적 제제’도 곧 임상시험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보통 먹는 약은 위에서 녹아 소장에서 흡수된다. 나머지는 대장을 거쳐 배설된다. 대장 표적 제제는 위장을 그대로 지나치고 대장에서 녹아 약의 효과를 발휘하므로 대장질환의 치료에 적합하다.
▽앞으로의 연구〓DDS 분야의 발전으로 개인의 생체리듬에 따라 약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맞춤약’이 조만간 선보일 전망이다.
대표적인 맞춤약으로는 당뇨병 환자의 혈당 농도가 변화함에 따라 인슐린 투여량을 자동적으로 조절하는 지능형 DDS 제제가 예상된다.
또 DDS는 선천성 유전병 치료나 항암치료 분야에서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즉 환자에게 필요한 유전자를 정확한 위치에 집어 넣을 수 있는 ‘유전자 전달체’(vector)의 개발에 DDS 연구가 크게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