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메일 진술서 증거능력 있다" 서울지법 첫인정

  • 입력 2000년 7월 11일 23시 29분


범죄 피해자나 참고인이 E메일로 작성한 진술서에 대해 법원이 ‘피고인의 동의가 있을 경우’ 증거능력이 있다는 판단을 처음으로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지법 형사8단독 배준현(裵峻鉉)판사는 11일 웹호스팅 업체를 해킹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모씨(32)의 첫 공판에서 피해자 박모씨(전남 목포)가 직접 검찰이나 법원에 출석하지 않고 E메일로 보낸 진술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배판사는 “피고인측이 E메일이 피해자에 의해 작성된 것이 맞다고 인정(증거 동의)했으므로 특별한 조사 없이 E메일을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진술서로 볼 수 있다고 판단, 증거능력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판사는 “E메일 같은 전자문서는 조작 등의 가능성이 높은 만큼 피고인측이 이의를 제기(증거 부동의)할 경우 보통의 자필 진술서보다 염격한 조사를 거친 뒤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313조는 진술서가 ‘자필’이거나 ‘서명 또는 날인’이 있는 경우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번 판단은 적지 않은 논란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박성호(朴成浩)변호사는 “아직 전자서명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이고 타이핑된 전자문서는 명백하게 글로 직접 쓰는 ‘자필’이라고 볼 수 없는 만큼 E메일은 동의나 부동의를 받을 증거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5월 박씨의 꽃집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웹호스팅 업체 S사의 시스템에 접속한 뒤 꽃집 회원정보 파일 4600여개를 다운받아 빼낸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박씨가 간단한 피해자 진술 때문에 먼 거리를 오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 E메일로 박씨의 진술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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