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광주비엔날레 본전시관 2층 「생성전」. 초록색 눈에 우주복을 입은 여인이 마법의 구슬 같은 수정체를 들고 있다. 붉은 입술에 머리카락은 은백색.
신화속의 공주같기도 하지만 어딘지 첨단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주변 풍경도 복잡한 기계구조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일본 작가 마리코 모리의 「마지막 출발」. 일본의 기계 컴퓨터문명속에서 다듬어진 영상이미지의 표현이다.
이 작품은 한쪽 벽면에 작가 자신이 우주복같은 옷을 입고 찍은 거대한 사진과 그 사진을 마주보고 선 원통형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통형공간 속에는 5개의 컴퓨터화면이 있고 그 안에 레이저 디스크로 투사된 작가의 표정들이 실린다. 자신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촬영한 그의 작품은 전자기술의 확산과 그 효과, 영상매체에 대한 관심을 주제로 삼고 있다. 금속성의 우주복이나 치밀한 컴퓨터 작업으로 뽑아낸 듯한 색상이 기이하고도 환상적이라는 평.
모리는 『나는 컴퓨터 게임의 환상속에 존재하는 사이보그를 만들어냈다. 환상속에서 연기하는 인물을 고안해 낸 것이다. 현실과 환상의 상호교환이 내가 몰두하고 있는 주제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는 기이하고도 몽환적인 느낌속에서 영상매체시대의 시각효과를 통해 현실과 환상 넘나들기를 시도한다. 자신이 꿈꾸고 욕망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저장한 뒤 이를 반복해서 되살려 낸다. 컴퓨터 기계문명이 만들어낸 가상 공간속에서 창조된 이미지를 설치미술로 재현함으로써, 모리는 사이버 공간이 더 이상 허구의 공간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모리처럼 첨단 기계문명의 사이버공간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지만 97광주비엔날레 참가작품을 보면 기계기술이 미술표현의 주된 양식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본전시관 1층 「속도」전에서 영화관같은 공간속에 대형스크린 작업을 보여주는 빌 비올라(미국), 어둠속에서 울려퍼지는 기괴한 저음속에 잠수함 잠망경으로 내다본 듯한 바다 풍경을 연출한 게리 힐(미국), 애니메이션 화면을 이용한 알랭 세샤스(프랑스) 등 유명작가의 상당수 작품들이 비디오와 첨단 기계 등을 사용하고 있다. 97광주비엔날레는 기계기술은 물론 가상현실까지도 예술표현의 대상과 양식으로 자리잡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이원홍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