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37>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4월 20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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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너희 한나라가 그리 강하고 초나라가 그리 약하다면 왜 너희 주인인 한왕이 초나라를 쳐 없애지 못하느냐? 더구나 과인이 다스리는 구강(九江)은 땅이 남쪽에 치우쳐 있고 백성들의 머릿수도 그리 많지 않다. 군사를 모조리 긁어모은다 해도 몇 만을 채우기 어려운데, 그걸로 물풍(物풍)한 서초(西楚)의 대군을 치기라도 하란 말이냐?”

곁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간이 오그라들 정도로 험하게 일그러진 경포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수하는 눈도 깜빡 않고 자신의 말을 마무리했다.

“신도 구강의 군사로 초나라를 쳐서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다만 대왕께서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와 싸워주신다면 항왕은 반드시 이리로 달려와 회남(淮南)과 서초(西楚) 어름에 잡혀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대왕께서 몇 달만 항왕의 발목을 잡아주신다면 한나라가 천하를 차지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니, 천하를 위해 그보다 더 큰 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신으로 하여금 대왕과 더불어 칼을 찬 채 한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우리 한왕께서는 반드시 땅을 떼어 대왕에게 내리실 것입니다. 하물며 원래부터 다스리시던 구강 땅이겠습니까. 한왕께서는 바로 이 같은 뜻으로 신을 대왕께 사자로 보내 삼가 어리석은 계책을 올리게 한 것이니, 아무쪼록 대왕께서는 그 깊은 뜻을 받아들여 주십시오.”

그러자 구강왕 경포의 얼굴에도 전과 다른 변화가 있었다. 희미하게나마 감동의 기색을 보이며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다가 무거운 한숨과 함께 말했다.

“내 이제 사자의 말을 알아듣겠소. 삼가 말씀에 따르겠소.”

그렇게 대답하는 경포는 말투까지 어느새 정중하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죄수와 도둑 떼 사이에서 몸을 일으켜 왕 노릇까지 하게 된 자의 노회함과 조심성 때문일까, 대답은 그리해놓고도 경포는 얼른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살피고 따지느라 우물쭈물하면서 초나라를 등지고 한나라를 따를 뜻을 나라 안팎으로 뚜렷이 드러내지 못했다.

그때 구강에는 초나라에서 온 사자도 경포의 답을 재촉하며 객사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한나라에서 사자가 왔다는 말을 듣고 더욱 급하게 경포를 몰아댔다.

“패왕께서는 구강왕께서 어서 날래고 사나운 군사를 내시어 북쪽으로 휘몰아 오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대왕께서 한(韓)나라에 이르시기만 하면, 패왕께서도 조(趙)나라 제(齊)나라에 흩어놓은 군사들을 모조리 서쪽으로 돌려 형양을 우려 빼고 한왕 유방을 사로잡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언제쯤이면 대군을 낼 수 있겠습니까?”

수하와 경포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간지도 모르면서 초나라의 사자가 그렇게 얼러대듯 물어오니 일껏 정해졌던 경포의 마음이 다시 약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쪽에도 얼른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면서 다시 며칠을 보냈다.

가져간 재물을 흩뿌려 사 둔 구강의 관리들에게서 그와 같은 소문을 들은 수하는 그냥 두어서는 일이 되기 어렵다고 보았다. 한 번 더 모진 마음을 먹고, 데려간 한나라 관원들과 함께 초나라 사자가 머무는 객사로 달려갔다. 시종 몇을 데리고 객사에서 쉬고 있던 초나라 사자는 수하가 스무 명이나 되는 관원들과 함께 객사로 뛰어들자 놀라기부터 먼저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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