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리더십]<3>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입력 2004-06-16 18:58수정 2009-10-0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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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저녁 서울시내 한 음식점.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화사한 분홍색 체크무늬 투피스 차림으로 들어섰다.

박 대표는 옷차림만큼이나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많이 오셨나요”라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121석의 야당을 이끄는 정치인이라고 믿기 어려운 앳된 소녀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박 대표의 분위기는 다분히 이중적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얼굴에 무심(無心)한 듯한 분위기와 함께 옅은 그늘이 깔려 있다. 박 대표는 또 어떤 경우에든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다. 어머니를 대신해 5년 남짓 ‘퍼스트레이디 대행(代行)’을 하면서 권력의 정점에 서는 것이 갖는 의미를, 불행한 가족사를 통해서는 권력의 무상함을 아울러 체득했기 때문인 듯 했다.

실제 16년간의 청와대 생활에 관한 첫 질문에 대해 박 대표는 “권력이라는 게 다른 사람들이 보면 화려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저것 거품을 다 털어내고 나면 바르게 정도(正道)를 따라 사는 것만 남는 것 같다”고 다분히 철학적인 소회를 털어놓았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꼭 무엇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다”며 ‘상식’과 ‘원칙’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권력이란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수단”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유산’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박 대표는 “당시에 피해를 본 분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으로 정치도 바르게 하고 나라 발전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게 (빚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비켜갔다.

다만 “리더십의 평가는 그 시대의 눈으로 봐야 한다”며 미리 준비한 듯 또박또박 말했다. 박 대통령의 국가건설과 산업화에 대한 공적이 폄훼되는 데 대한 불만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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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기아선상에 빠진 경제를 살려야 할 때가 있었다. 남북대치 상황에서 안보를 챙겨야 할 때가 있었지만 냉전시대가 끝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으냐. 그 시대의 리더십이 잘했느냐 못했느냐는 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판단해야 한다.”

거꾸로 최근 자신이 추구하는 상생(相生)의 정치와 유화적인 대북정책도 이 같은 ‘시대정신의 변화’에 입각한 것임을 둘러 대답한 셈이다.

이런저런 질문이 쏟아지자 박 대표는 메모지를 찾았다. 그는 메모지에 질문 사항을 꼼꼼히 기록하며 순서대로 답변했다. 전문용어는 거의 쓰지 않고 쉬운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면서도 앞뒤 조리가 맞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답변 스타일이다. 물론 감정이 ‘오버’돼 돌발적인 답변을 하는 일도 없다.

박 대표는 인터뷰 내내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배석한 한선교(韓善敎) 대변인은 “총선 유세를 위해 강행군을 하면서도 비행기 안에서 전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엄격한 생활 태도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이상적 여성 리더를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를 꼽았다.

“(엘리자베스 1세는) 어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 스캔들 있는 것처럼 음모도 당했는데 이런 것을 잘 참아내 사려 깊은 지도자가 됐다. 자기가 겪어 봤기 때문에 남을 배려할 줄 알았다. 늘 관용의 정신을 갖고 합리적으로 하려고 했기 때문에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대영제국을 만들었다.”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이 참수된 뒤 그의 왕위 계승권이 박탈됐다. 이복언니 메리 1세의 가톨릭 복귀 정책이 반란으로 번졌을 때 그는 반란 가담 혐의를 쓰고 런던탑에 유폐(1554)되기도 했다. 인고의 세월을 버틴 뒤 왕권을 장악한 그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해상권을 제패하는 등 대영제국의 기틀을 세웠다. 엘리자베스 1세는 “난 잉글랜드와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을 고수했다.

박 대표는 인터뷰 내내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국가’와 ‘나라’는 그의 발언 전반을 지배하는 ‘키워드’였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비전도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고 한마디로 압축했다.

박 대표는 또 정도를 걷는 보수적 리더십을 강조했다. 당내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가능하면 보수란 말도 쓰지 말자”는 주장엔 분명히 반대했다. 이른바 ‘보수(補修)하는 보수(保守)론’이다.

“언제부터 보수가 천덕꾸러기가 됐느냐. 그동안 보수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부패와 연결돼 이상하게 된 것이다. 사실 보수는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않으면 보수가 아니다. 시대에 맞춰 깨끗해지도록 노력하면서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강조했다.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대신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보수적 컬러가 뚜렷했다. ‘선(先) 성장, 후(後) 분배’ 원칙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분명한 각을 세웠다.

“소외계층에 대한 분배는 당연하지만 노 대통령은 분배 쪽에 너무 치우쳐 성장잠재력을 침체시키고 있다. 무슨 ‘파이’가 있어야 분배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국가는 가능한 한 경제에 간섭하지 않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대신 환경과 사회복지 분야를 맡아야 한다.”

7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 선언한 박 대표이지만 당내 세 확산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일부 대선주자들이 물밑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계파는 만들면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데 결국 이런 계파정치가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됐느냐”고 반문하면서 “새 정치를 하자는 마당에 그럴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국민적 지지도가 승부의 열쇠라는 판단이 깔린 듯했다.

그러나 7월 전당대회에서 다시 대표로 선출될 경우 박 대표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서게 되는 셈이다. 지금까지는 한나라당을 구한 ‘잔 다르크’의 이미지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야당지도자로서 새로운 관리능력과 어젠다 창출능력을 함께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상식’과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자기 자리를 지키면 ‘바람’은 언제든 다시 불어온다는 듯한 태도였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5일 오후 2시간여 동안 진행된 본보와의 집중 인터뷰에서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박 대표는 이날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다소 유연한 입장을 밝혔으나 경제관에 대해서는 ‘선 성장, 후 분배’라는 보수적 색깔을 분명히 했다.-서영수기자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편치않은 가족사…"음해성 루머에 황당"▼

“뭐가 잘못 됐나요.”

박근혜 대표는 자신과 관련된 과거의 풍문을 단호하게 부인했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그가 잠시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표는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1970년대 후반 최모씨가 총재로 있던 구국여성봉사단의 명예총재로 활동했다. 루머의 내용은 최씨가 사기행각을 벌였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를 알 정도로 문제가 됐으나 박 대표가 최씨를 보호했다는 것.

박 대표는 작지만 강한 어조로 “이미 20년이 넘게 지났다. 만약 범죄가 있었다면 그동안 피해자도 나타나고 시끄러웠을 것이다. 살다보면 별 얘기가 다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2002년 초 당시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당 운영 스타일에 반발해 탈당했다. 당 일각에선 박 대표가 대권주자로 나설 경우를 겨냥해 이 루머를 기초로 한 비밀 파일을 만들기도 했다.

딱딱해진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저 사람이면 하는 그런 사귀고 싶은 이상형의 남자를 본 일이 있느냐”며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박 대표는 “사춘기 시절에…”라고 말하면서 쑥스러운 듯 손으로 입을 반쯤 가린 채 살짝 웃었다.

다른 민감한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항간에 가족과 절연하다시피 하며 지낸다는 얘기가 있다”는 물음에 박 대표는 “저는 그런 게 아닌데…. 그쪽에서 연락을 안 하는 것도 있고…. 줄곧 연락하고 살 수는 없지만 시간이 되면 연락을 한다”고 짧게 답했다.

박 대표는 가족을 ‘그쪽’이라고 지칭했다. 여동생 서영(書永)씨는 청와대에서 생활할 때부터 ‘대통령의 딸’이란 격식에 구애받지 않아 박 대표와 대비됐다. 남동생 지만(志晩)씨는 최근 몇 년간 수차례 마약 혐의로 적발됐다. 또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전 총재가 박 대표의 사촌형부다.

화제를 ‘부모님’ 얘기로 돌리자 분위기가 다시 부드러워졌다. 그는 “부모님 중 누굴 더 닮았느냐”는 질문에 “외모는 어머님을, 속은 아버님을 닮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나도 그런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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