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51>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5월 13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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鴻門의 잔치 ⑨

“자방 선생은 어떻게 항백과 친분을 맺게 되었소?”

패공 유방이 장량에게 불쑥 그렇게 물었다. 장량이 옛일을 털어놓았다.

“진나라의 다스림을 받을 때 항백과 더불어 어울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하비(下비)에 살았는데, 항백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쳐 왔기에 여러 해 그를 내 집에 숨겨주고 골육처럼 보살펴 주었습니다. 나중에 오중(吳中)에서 자리 잡은 그 아우 항량과 조카 항우를 찾아가면서, 항백이 제게 살려준 은혜를 감사한 일이 있었는데 이제 제게 위급한 일이 생기자 다행히도 이렇게 달려와 일러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패공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불쑥 장량에게 물었다.

“선생과 항백 두 분 중 어느 분이 더 연세가 드셨소?”

“항백이 저보다 여러 살 위입니다.”

장량이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영문을 몰라 패공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패공이 여전히 자신의 생각에만 몰두하여 그런 장량의 눈길을 무시한 채 말했다.

“그럼 잘 되었소. 자방은 얼른 항백을 불러주시오. 내가 그를 형으로 섬길 것이오!”

얼른 들으면 엉뚱한 소리였지만 장량은 비로소 그러는 패공의 뜻을 짐작하였다.

(아재비와 조카 사이[숙질]의 정에 매달려 보려는 것이로구나. 아재비인 항백을 써서 항우의 분노를 달래보려 한다. 격하지만 정의(情誼)에 약한 초인(楚人)들 상대로는 좋은 계책이 될 수도 있겠지….)

그렇게 헤아리면서 항백을 패공의 군막으로 불러들였다.

그 사이 술상을 차려오게 한 패공은 항백이 오자 큰 잔 가득 술을 부어 권하며 말했다.

“여기 이 자방 선생은 내게 없어서는 안 될 꾀주머니[智囊] 같은 사람일뿐만 아니라 오래 싸움터에서 생사를 같이해 온 터라 내게는 또한 골육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자방이 형님으로 섬긴다니, 항(項)공은 내게도 형님이 됩니다. 이제부터는 공을 형님으로 모실 터이니, 부디 어리석고 미련하다 이 아우를 물리치지 마십시오.”

그 말에 항백은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감격했다. 지금은 세력에 몰려 위급한 처지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천하가 이미 다 그 이름을 들어 아는 패공이었다. 거기다가 먼저 진나라의 항복을 받아내어 회왕(懷王)의 약조대로라면 마땅히 관중왕(關中王)이 되어야할 사람이 아닌가.

패공이 내미는 잔을 얼결에 받아 마신 항백은 그냥 두면 엎드려 절이라도 할 것 같은 패공을 붙들 듯하며 말했다.

“패공, 이 무슨 망발이십니까? 헛된 나이만 먹어 비록 패공보다 한두 살 위이긴 하나, 형이라니 될 법이나 한 소립니까? 거기다가 저야말로 저기 장(張)대협 덕분에 죽을 목숨을 건진 적이 있으니, 이 목숨은 이미 장대협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장대협이 따르고 모시는 분이면 제게도 마땅히 따르고 모셔야 할 분이 됩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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