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04…낙원으로(21)

  • 입력 2003년 8월 27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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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나가 젓가락을 들어 나미코의 오른손에 쥐어주자 나미코는 얼빠진 표정 그대로 나무젓가락으로 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 거의 씹지도 않고 삼켰다. 그러나 거의 동시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창가로 달려가 웩웩 토했다. 고하나도 아이고 불쌍해라, 불쌍해서 어쩌지 아이고, 라고 훌쩍훌쩍 울면서 등을 쓸어주었지만 나미코는 젖을 빨다 목이 멘 아기처럼 딸꾹거리다가는 토하고, 토하다가 딸꾹거리면서 토할 것이 더 이상 없는데도 웩웩거렸다.

“아직은 체념할 수 없겠지만 여자 몸으로 남자를 셋 받으면 저절로 체념이 생겨나는 법, 그때까지는 실컷 울어라. 그러나 운다고 내 말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한번밖에 설명하지 않으니까. 나미코, 잘 듣고 고하나에게 전해라. 나중에 잘 모르고 있으면 혼날 줄 알아라.

병사들이 너희 방에 들어오면 어서오세요, 그쪽에 앉으세요, 돌아갈 때는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라고 한다. 나미코는 고하나에게 일본말을 가르쳐 줘라. 한 달이 지나서, 하나 둘 셋 넷, 쌀, 술, 담배, 바늘, 실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지 안 그러면 벌을 줄 것이다.

한 달에 세 번 군의관에게 검사를 받는다. 오늘이 그날인데, 너희들은 어제 검사를 받았으니까 면제다. 임신, 임질, 매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첫째가 세정, 둘째가 위생 색, 즉 투구다. 투구라고 해서 철로 만든 것은 아니니까 구멍이 뚫릴 수도 있고 샐 수도 있다. 나중에 너희들에게 소독액을 한 병씩 줄 것이다. 카멜레온수라고 하는데, 세면기에 몇 방울 떨어뜨리면 보라색으로 변한다. 한 명이 끝날 때마다 그 물에다 도구를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카멜레온수를 그대로 마시고 자살을 기도한 다마키란 여자가 있었는데, 온몸을 뒤틀면서 괴로워했지만 결국 죽지 못했다. 벌로 부대부 일을 시켰다. 부대부란 부대를 따라 전선으로 이동하는 거다. 철모 쓰고 몸뻬 자락에 천 둘둘 말고, 작업화 신고, 적기가 휭휭 날아다니는데 맨땅 위에서 그냥 하는 거다. 총알에 맞아 죽은 여자도 있고, 걷지 못해서 버려진 여자도 있다. 살아 돌아와도 오래는 못 간다. 결국 다마키는 반년도 채 못 가서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란 뜻이다.

그리고 위안부는 만인의 아내여야 한다. 누구 하나에게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상대가 누구든 한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 벌로 밥을 굶긴다. 너희들이 하는 일은 임무라는 것을 명심해라.”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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