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91…전안례(奠雁禮) 13

  • 입력 2002년 12월 6일 17시 49분


“누가 나왔는데예?”

“좀 기다려 봐라, 생각이 날 것도 같다…산 속에서 달리고 있었는데…어느 산일까…낙엽이 쌓여 있어서 아주아주 부드럽다, 길이. 마치 달리고 있지 않은 것처럼 숨도 깊게 편하게 쉴 수 있고, 그 숨이, 뭐랄까, 아주 행복한 느낌이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빛이 흔들리는 것처럼 깜박 깜박…푸르스름한 빛이…”

“밤인가예?”

“…모르겠다…하지만 밤은 아닐 거다, 아마 숲이 울창해서 어두운 걸 거다. 아아, 너무 설명하면 실제로 꾼 꿈하고 달라진다. 그대로 얘기할 테니까, 그냥 들어라. 떨어져 있는 잎은 낙엽인데, 나무에 무성하게 매달려 있는 잎은 푸릇푸릇하다, 한여름처럼. 그런데도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그리고 달리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내가 있다, 이쪽에. 달리는 나는 저쪽에 있고. 그래서 나는 꿈이라는 것 알고 있다”

“막 깨기 전이라 얕은 잠을 자고 있었나 보네예”

“그랬겠제…음, 그 다음부터는 생각이 안 난다. 생각 안 나는 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보통 학교 운동장에 있다. 내 옆에는…우홍이가 있고. 그래 우홍이다. 알루미늄 도시락 뚜껑을 열고, 절반씩 나눠 먹고 있다. 도시락은 내 거고. 먹으면서 웃고 있다. 우홍이 입에서 밥알이 막 튀어나오고. 왜 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둘이서 깔깔 웃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제, 숨은, 달릴 때 하고 똑 같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하고 말이다. 금방 얘기한 산 속 꿈도 계속 이어져서, 또 다른 나는 아직도 달리고 있다”

“그래서예?”

“끝이다. 시시하제? 얘기해버리면 아무 것도 아이다, 꿈은. 하지만 꿀 때는, 이대로 영영 눈을 뜨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했을 정도로 행복했다…내가 꾼 꿈 얘기 한 거, 이게 처음이다”

“시시하지 않습니다. 난, 당신 꿈을 알고 싶어예. 앞으로도 꿈꾸면 얘기해 주이소”

“매일 꾸면?”

“매일 얘기하지예. 우홍이란 사람은 친굽니까?”

“…음, 친구다”

“어제 왔었나예?”

“안 왔다. 벌써 밀양에 없다”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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