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78…아리랑(17)

  • 입력 2002년 7월 22일 18시 34분


4교시의 끝을 알리는 종은 점심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보자기 꾸러미에서 알루미늄 도시락을 꺼냈다. 도시락에 들어 있는 것은 흰쌀이 보일락말락 섞인 보리밥에 콩조림, 냉이 나물, 배추김치 아니면 깍두기가 전부였다. 그나마 도시락을 가져온 학생은 4학년 2반에서 아홉 명밖에 없어, 대부분의 학생들은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운동장에는 철봉과 모래 놀이터밖에 없었지만 소년들은 돌차기를 하거나, 고무 공으로 축구, 새끼줄로 전차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소녀들은 창가 시간에 배운 노래를 “모시모시, 카메요, 카메상요, 세카이노 우치니, 오마에호도 아뮤미노 노로이 모노하와이, 도우시테 손나니, 노로이노카(여보세요 거북이 거북이님, 세상에서 걸음이 당신처럼 느린 건 없어, 왜 그렇게 느린 건가요)”하고 부르면서 고무줄놀이를 했다.

본관과 체육관 사이에 있는 뒷마당에는 우철이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철은 풀 냄새에 싸여 가끔씩 무릎을 좍 펴면서, 모든 사람과 모든 장소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감각 속에서 쉬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 점심 시간이 끝나면 2교시 더하고 집에 간다. 엄마는 안방에 아기와 함께 누워 있을 것이고, 할매는 두 사람을 보살피느라 정신이 없겠지. 저녁은 어제와 똑같은 깍두기에 미나리 나물일 테고. 우철은 옆자리 최정천의 도시락을 생각하면서 군침을 삼켰다. 계란찜과 소고기 장조림, 은어 술지게미 절임. 먹을 거 생각은 그만두자, 생각해 봐야 앞으로 두 시간은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으니까. 우철은 풀 위에 벌러덩 누워 팔베개를 베었다. 목은 마른데, 모두들 모여 있는 곳에는 가기 싫다. 앞으로 30분, 종이 울릴 때까지 목과 혀를 쉬게 하고 싶다. 동생의 얼굴을 떠올리고 싶은데, 기억에 막이 서려 비처럼 촉촉한 두 눈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두 눈이 자기 마음속을 속속들이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우철은 희미한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눈이 안 떠져 나는 피곤해 봄인데 너무 피곤해.

“이런 데서 자고 있었냐. 찾아 다녔다”

우홍이다, 우철은 눈을 떴다.

“괜찮아?”

우철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다. 앗!” 우철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여기는 괜찮다. 듣는 사람 아무도 없다”

“누가 듣고 있을지 어떻게 알아” 우철은 눈을 깜박거리며 윗몸을 일으켰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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