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배아저씨의 애니스쿨]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1)

  • 입력 2001년 1월 29일 13시 52분


그간 연재가 중단되었지요. 우선 초기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몇 가지 사정이 겹치면서 소중하게 연재를 계속하겠다는 각오가 무너진 거지요. 이에 대한 변명까지도 이 연재가 지향하는 한 축인 '현장 속의 강의'인지라 그 사정도 밝히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저의 애니 스쿨을 이어갈까 합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으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팀의 일원으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무슨 화두처럼 제대로 된 국내 극장용 장편을 하나 만들어 보자는 과제가 늘 버티고 있었어요. 10년 넘게 저는 그러한 프로젝트들에 혹은 책임자인 양 관여하거나, 혹은 조금은 비켜서다 멀어지기도 했지요. <기찻길>, <아마게돈>, <헝그리베스트5>, <소나기>, <소년병 바우>, <망치>, <히야신스> 등 꽤 많네요. 그러다가 이번 <바리공주>와 만나게 되었지요. 먼 길을 돌아 제 몸과 마음에 꼭 맞는 임자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우선 장선우라는 문제적(?) 영화감독이 이 장편 애니메이션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 저를 동아줄처럼 <바리공주>에 묶이게 했어요. 누구나 인정하던 한국 애니메이션에 가장 부족하다는 영화적 안목을 갖춘 시나리오!

'꿈 속에서 용의 머리를 베어버리니 현실의 벽도 움직인다!'

장 감독이 직접 짠 바리 이야기는 국내 애니메이션의 기존 시나리오 구습을 일거에 베어버리는 충격과 솟아나는 영감으로 제게 다가온 셈이죠. 나아가 그 구성은 원전으로 삼은 우리의 무속신화 '바리데기'를 뛰어넘는 세계성, 적어도 동양 문화권을 섭렵할 수 있는 비전이 담겨있다고 보았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잘 만들어낼 수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실적 토대를 지원하고 마련해내는 것이었죠. 이 프로젝트를 공개제작 방식으로 운영하자는 것, 우리 미의 정체성과 그 원형을 탐구해서 이를 현대적 감각과 해석으로 작품에 투영하자는 것 등이 분명한 대안으로 수렴되더군요.

단순한 제작 이슈가 아니다, 한국 애니메이션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창구를 통해 기존의 국내 애니메이션의 제작관성을 극복해보자, 제작 자체가 신선한 소통과 공유의 장이 되도록 하자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이미 있어왔고 어찌 보면 가장 잘 할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을 올바로 찾아내서 작품에 담아내자는 것이죠. 우리에게는 놀라운 조선 민화의 유산이 분명 있습니다.

고려 불화에 나타난 찬란한 기법들, 고구려 벽화의 현대적인 맛, 더 나아가 온갖 구비문학, 무속이 지니는 주술적 마력을 동반하는 전승예술의 풍부한 잠재력도 있어왔어요. 이것들의 올바른 정체성은 우리 것만 고집해서 찾아지는 게 아닌 거죠. 딱히 <바리공주>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본 연재를 중단하면서까지 실크로드의 긴 답사 여정을 다녀왔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른바 '호연지기'라는 것이 제 마음에서 아직도 꺼져들지 않는군요. 서천서역 길을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감히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술사적 의미도 깨달았다고 외치고 싶어요.

전체 아시아권을 배경으로 하는 방대한 세계상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에서 무언가 찾아지리라는 확신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공주>를 포함하여 현재 진행 중인 한국 애니메이션의 대중성과 세계성, 보편성과 이국성을 조화시키려는 의지의 출발이라고.

그 의지를 앞으로 쓰게 될 글에도 담아 네티즌 독자 여러분께 선사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용배 (계원조형예술대 애니메이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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