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라의 미각시대]청와대 김장김치

입력 2000-01-13 19:11수정 2009-09-2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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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김치는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과 함께 식사를 하는 귀빈이 모두 우리나라 사람인 것은 아니므로. 10일 오후, 김치 맛을 보기 위해 청와대를 찾았다.

지난해 12월 중순 배추 400포기 규모로 담근 김장김치가 여러 개의 김칫독에 담겨 있었다. 각각의 김칫독에는 배추김치 깍두기 갓김치 파김치 등의 ‘이름표’가 담근 날짜와 함께 달려 있다.

배추김치를 꺼내 맛을 봤다. 적절히 배합된 멸치젓과 새우젓 생굴이 내는 진한 감칠 맛이 순식간에 입안을 휘감는다. 멸치젓으로만 담근 김치는 고춧가루의 빨간 색이 죽어 칙칙한 빛이 나게 마련인데 새우젓과 생굴이 ‘변색’을 막으면서 젓갈 특유의 비린내를 고소하게 승화시켰다.

돌갓으로 담근 갓김치는 발그스레한 색상이 지하창고에서 조용히 숙성된 적포도주를 연상케 한다. 한 젓가락 입에 물고 깨문 순간 터져 나온 즙이 입안 가득 고인다. 기본 간이 제대로 밴 갓 줄기의 고소함은 시원한 즙을 삼킨 다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너무 단단하지도 물렁하지도 않은 깍두기는 씹는 맛이 일품. 뿌리에 흰 부분이 많은 재래종 파를 골라 만든 파김치는 흐트러짐 없는 여인네의 머릿결처럼 단아하게 담겨 나와 젓가락을 대기가 송구스럽다.

김대중대통령은 덜 익지도, 시지도 않은 적당히 발효된 김치를 즐긴다는 조리팀의 얘기. 때로는 돼지고기나 멸치를 넣고 푹 끓인 김치찌개를 찾기도 하며, 김치만 있으면 미역국, 시래기 된장국, 육개장으로 밥 한 공기를 뚝딱 해 치우는 ‘김치광’이라고 한다.

그 덕분인지 외국 귀빈의 식탁에 ‘맛뵈기’로 조금씩 오르던 김치가 이제는 당당히 제일 먼저 오르고 있고, 청와대를 자주 찾는 일부 국빈은 식사를 할 때면 “김치를 많이 퍼 달라”고 요구 하기도 한단다.

▼청와대 김치의 자료 배합▼

△배추 200통 △소=무 10개, 갓 500g, 실파 500g, 파 400g, 마늘 200g, 생강 100g, 새우젓 1컵, 멸치젓 2컵, 고춧가루 1kg.

송희라(요리평론가)hira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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