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산책]억제가 능사는 아니다

  • 입력 1997년 1월 4일 20시 06분


작년말 『독불장군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이 여당의 무성한 대권논의를 일시에 잠재우더니 새해들어 다시 대권논의를 단속하는 여당중진의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대선후보들의 당내 경선분위기가 너무 일찍 과열되면 당론이 분열되고 쓸데없는 당력의 소모가 있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바로 대선분위기의 과열로 이어져 우리 사회 전반에 여러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 大權논의 몇가지 의문 ▼ 그러나 이미 대선이 열한달 뒤로 다가든 이 시점에서 보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는 그런 인위적인 대권논의 억제에 몇가지 의문이 인다. 과열의 폐해에 못지않게 억제의 폐해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대권 논의가 미뤄지고 주자(走者)의 확정이 늦어지는 경우의 바람직하지 못한 효과다. 그럴 경우 대통령선거본선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몫은 그만큼 적어진다. 겨우 몇달로 자신의 이미지를 창출해 확산시키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은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국민들 쪽에서 보면 선거가 임박해서야 후보로 확정된 인물에 대해 검증해 볼 여유가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인위적인 논의 억제가 필연적으로 키워갈 주자 결정의 밀실성(密室性)내지 막후성(幕後性)이다. 대중에게 드러나지도 않고 여론의 검증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당내의 경선은 국민과는 무관한 파벌간의 역학관계나 힘있는 한사람의 의중에 좌우될 가능성이 많다. 이 정부가 그동안 주장해온 정치의 투명성과는 아무래도 아구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의문은 이른바 「구룡」(九龍)이라는 여당의 대권주자군(群) 전체가 그로 인해 쓰게될 선거에 별로 유리하지 못한 이미지다. 틈만 있으면 고개를 내밀다가 누가 한마디 크게 소리치면 쑥 들어가버리는 그들에게서 국민들은 허약함과 「도토리 키재기」식의 왜소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나중에 정치적으로 아무리 화려한 분식을 한다 한들 그 좋지않은 이미지가 쉽게 지워질 것인지. 그밖에 또 한가지 여당이 걱정해야할 일은 인위적이면서도 지나치게 강경한 대권논의 억제가 항간에 일으키고 있는 의혹이다. 국민 중에는 주자군에 대한 잇따른 경고성 발언들을 『너희들은 아니야』란 말로 곡해하는 이들이 생겼고 심하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의 돌출을 점치기까지 한다. ▼ 「密室性」조장은 아닐지 ▼ 지금 우리가 앞두고 있는 것은 대통령 선거이고 새로이 뽑힌 그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이 나라의 21세기를 열어갈 사람이다. 우리는 그 사람이 밀실이나 막후에서 도출하거나 충분히 검증받지 못한 상태에서 일시적인 분위기만으로 뽑혀지기를 원치 않는다. 너무 일찍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여론의 단련을 받은 뒤 투명성을 확보한 경선을 통해 후보로 확정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여당의 주자군에게도 무턱댄 대권논의 억제보다는 대통령 후보로서의 소신과 전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이도록 해야 하며 서로간의 변별성을 가지고 유권자들에게 다가들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 문 열 <작가·세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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