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신민기]석사 출신, 벽돌학교 입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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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기 경제부 기자
신민기 경제부 기자
다음 달이면 친구가 호주로 이민을 떠난다. 고등학교 시절 똑소리 나던 그녀는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고 일도 야무지게 해내는 듯했다. 3년 전 대형 건설사에 다니는 착한 남편도 만났다. 친구 부부는 부지런히 일하고 소박하게 쓰고 차곡차곡 저축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신축 빌라에 전세를 얻어 알콩달콩 신혼살림도 시작했다. 그녀의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너희 참 예쁘게 산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녀가 난데없이 이민을 떠난다고 했다. “남들이 모두 선망하는 회사까지 그만두고 호주에 가면 뭐 해 먹고 살 건데”라며 아쉬운 마음에 힐책하듯 그녀에게 물었다. 답은 놀라웠다. “나는 일단 쉬고, 남편은 ‘벽돌학교’에 입학하려고.”

벽돌 쌓는 전문 기술을 가르쳐 주는 직업훈련기관을 친구는 ‘벽돌학교’라고 불렀다. 서울 시내 명문대 토목공학 석사인 그녀의 남편은 벽돌학교를 다녀 기술을 익히고 영주권을 얻을 계획이다. 현지에 적응하면 관련 사업도 해볼 작정이다.

최근 호주는 건설경기가 좋아지면서 벽돌공 수요가 많다고 한다. 보통 일당 300∼350호주달러를 받지만 쌓은 벽돌 수에 따라 일당을 받기도 한다. 하루에 벽돌 1000개를 쌓아 2000호주달러, 우리 돈으로 약 180만 원까지 받은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하루에 180만 원이면 결코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평생 공부만 하던 사람들이 괜찮겠나 하는 걱정이 앞서 “왜 이런 결심을 한 거냐”고 물었다. 친구는 많이 들은 질문이어서 귀찮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앞이 안 보여서.”

실제로 최근 국내 경제지표들을 보면 그녀가 느꼈을 ‘불안한 미래’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 지난해 한국의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37만3000원으로 1년 전보다 1.6%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증가율이다.

소득이 찔끔 늘어나는 동안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값은 5237만2000원이 올랐다. 서울 사는 부부는 13년을 벌어야 겨우 집 한 채를 장만할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도 소득과 집값의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을 사고 전세를 구하려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정부도 그러라고 이자도 깎아 주고 대출 규제도 풀어 줬다. 그 덕에 지난해 가계부채는 1200조 원을 돌파했다. 부채 부담이 늘자 가뜩이나 얇아진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56만3000원으로 전년보다 0.5% 증가했지만 소비자 물가상승률(0.7%)을 감안하면 전년보다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소비가 위축되니 기업 경기도 침체되고 다시 국가 경제 전체가 나빠지는 악순환이다.

정부는 “괜찮다”고 한다. 세계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서 한국은 3%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경상수지도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할 정도여서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 말에 동의하긴 쉽지 않다. 친구 부부는 대기업에서 맞벌이로 열심히 일했지만 오르는 전세금을 충당하기에도 버거웠다고 했다. 그들은 결국 호주의 벽돌학교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떠나려 한다. ―세종에서

신민기 경제부 기자 minki@donga.com
#벽돌학교#호주#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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