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저격수’로 나선 밴스…“행정부 통제 말라”[트럼피디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23일 08시 00분


20일 미국 메릴랜드주 옥슨힐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에서 무대에 오른 밴스 부통령. 옥슨힐=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광범위한 조치에 법원이 속속 제동을 걸고 있다.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부합하는 흐름이지만, 트럼프 대통령 측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판사들은 행정부의 합법적 권력을 통제할 수 없다.”

예일대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J D 밴스 부통령이 9일(현지 시간) 자신의 X를 통해 밝힌 입장이다. 그는 이번 행정부에서 ‘사법부 저격수’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밴스 부통령이 어떤 판을 짜고 있고, 최근 트럼프 대통령 측 기류가 어떤지 살펴봤다.

● “판사는 행정부를 통제할 수 없다”
뉴욕 연방법원은 8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가 재무부 결제 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긴급 명령을 내렸다. 9일 머스크는 이 판결을 한 폴 엥겔마이어 판사를 겨냥해 “부패한 판사가 부패를 보호한다. 지금 당장 탄핵당해야 한다”고 X에 적었다.

머스크가 운을 띄우자 판사 개인에 대한 공격이 쏟아졌다. 톰 코튼 상원의원(아칸소)은 엥겔마이어 판사를 “무법자”라고 칭하며 “트럼프 행정부 관련 사건을 맡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마이크 리 상원의원(유타)은 “사법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성비위 의혹으로 낙마한 뒤 극우 방송 원아메리카뉴스네트워크(OANN)에서 시사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는 맷 게이츠 전 하원의원도 “판사를 탄핵하자”고 했다.

7일 ‘대통령의 날’을 맞아 미 전역에서 ‘반(反)트럼프’ 시위가 열린 가운데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시위에 참석한 시민이 일론 머스크와 정부효율부(DOGE)에 반대한다는 푯말을 들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머스크가 게시글을 올리고 약 8시간 뒤 밴스 부통령은 “판사들은 행정부의 합법적 권력을 통제할 수 없다”고 X를 통해 밝혔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도 해당 판결에 강하게 반발했다. 슈퍼볼 참석을 위해 뉴올리언스로 가는 에어포스원 안에서 그는 “불명예스러운 판결”이라며 “솔직히 그 어떤 판사도 이런 결정을 하게 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해당 판결에 대해 “갈 길이 멀다”며 사법 절차에 따라 항소할 뜻을 시사했다.

현재까지 트럼프 행정부에 제동을 건 법원 판결은 10건 이상이지만 대부분 임시 조치이다. 상급 법원의 판단도 남아있는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와 사법부 간 마찰이 장기화할 전망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 “판사가 ‘불법 판결’ 내릴 수도”
밴스 부통령이 구상한 전략은 무엇일까. 미 언론은 그가 9일 발표한 X 입장문에 주목했다. 그는 딱 세 문장을 적어서 올렸다.

“판사가 장군에게 군사작전을 어떻게 수행할지 지시하면 그건 불법이다.

판사가 검사로서 재량권을 어떻게 사용할지 법무장관에게 명령하려 든다면 역시 불법이다.

판사들은 행정부의 합법적 권력을 통제할 수 없다.”
그의 입장문에 따르면 행정부의 활동과 관련한 사법부의 판결은 ‘적법한 판결’과 ‘적법하지 않은 판결’로 분류된다. 밴스 부통령의 주장에 따르면 판사가 ‘불법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에 그가 “행정부의 핵심 권한을 침해한다”는 논리로 사법부 판결의 적법성을 따지려고 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연방대법원의 ‘정치적 문제 원칙’이 쟁점이 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정책 결정과 직결된 사안 △행정부 및 입법부의 헌법적 권한을 침해하는 사안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밴스 부통령이 사법부가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해 행정부의 권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16일 X를 통해 “조국은 구하는 사람은 어떤 법도 위반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이 같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 “대법원 판결에 불복할 수도”
3부가 권한의 범위를 두고 충돌하는 일이 전혀 새롭지는 않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대통령의 군 통수권자로서의 권한을 근거로 수감자에 대한 고문을 금지하는 현행법과 충돌하는 ‘강화된 심문 기법(EIT)’ 정책을 2002년 도입해 물고문 등을 재개했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구금자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판결을 연이어 내놨지만, EIT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의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공화당 소속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주도해 미군이 구금자를 상대로 고문을 실시하지 못하게 하는 구금자 처우법이 2005년 통과됐고, 2008년에는 EIT의 시행을 막는 법안이 통과됐으나 부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됐다.

이번에는 충돌 양상이 다르다. 상·하원 과반을 차지한 공화당을 트럼프 대통령이 장악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입법부는 사실상 견제 능력을 잃은 상황이다. 이에 법원이 행정 조치를 즉각 차단하는 판결을 내놓으며 대응 수위를 끌어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밴스 부통령 개인에 대한 사법부의 불안 또한 매우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가 공개적으로 법원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2021년 9월 ‘잭 머피 라이브’에 출연한 밴스 부통령(오른쪽). 사진 출처 잭 머피 라이브 유튜브

2021년 갓 정계에 입문한 정치 신인이었던 밴스 부통령은 상원의원 선거를 준비하며 친트럼프 인사로 돌아선 상태였다. 그는 ‘매노스피어(Manosphere·남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 성향 팟캐스트 ‘잭 머피 라이브’에 출연해 사안에 따라 대법원 판결에 불복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에서 중간 관리자와 고위급 공무원을 모두 해고하고 우리 사람들로 교체해야 한다. 법원이 이를 막으려고 한다면 국민 앞에 나서서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처럼 말하면 된다. ‘대법원장이 판결을 내렸군. 이제 직접 집행해보라지’.”

이는 1832년 대법원이 ‘조지아주 법률은 체로키 영토에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을 때, 잭슨 대통령이 이를 무시했다는 유명한 일화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당시 조지아 주의회는 체로키 원주민의 땅을 몰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잭슨 대통령은 이를 지지했다. 대법원은 해당 법안이 무효라고 판결하고 “체로키족이 연방정부와 직접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자치권을 가진다”고 판결했지만 잭슨 대통령은 이를 집행하지 않았다. (다만 실제 발언 여부는 불확실하다.)

지난달 20일 취임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밴스 부통령의 모습. 워싱턴=AP 뉴시스

밴스 부통령은 2022년 중간선거에서 상원의원에 당선 후 이번 대선 국면에서 해당 발언을 강조하며 부통령 주자로서 몸값을 올렸다.

*밴스가 친트럼프 인사로 돌아선 과정은 트럼피디아 10화에서 살펴봤다.

지난해 2월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수정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대법원의 적법한 판결에 따라야 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연방대법원이 ‘대통령이 군 장성을 해임할 수 없다’고 판결한다면 그건 부당한 판결”이라고 반박하며 대법원 판결을 불복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해 3월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는 2021년 팟캐스트 방송에서 한 발언이 여전히 그의 정치적 견해를 정확히 드러내는지 묻자 “그렇다(Yup)”고 답했다. 이어 “선출된 대통령이 행정부 공무원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는데, 대법원이 제동을 걸면 그 자체로 헌법적 위기”라며 “이런 헌법적 위기가 현재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사법부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21일 연방대법원은 특별감찰실(OSC)의 해프턴 델린저 국장에 대한 면직 명령을 이달 26일까지 정지한 워싱턴 연방법원의 판결을 일단 유지하기로 했다. 워싱턴 연방법원의 후속 판결을 지켜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와 관련한 연방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 변호인이 성급하게 연방대법원에 제소했다는 지적도 나오는 가운데 6:3으로 보수 우위인 대법원에서 보수 성향 대법관 4명(이 중 2명은 트럼프 1기 때 임명)이 판결을 보류하기로 선택한 점도 주목받고 있다.

미 연방대법관 9명의 모습. 앞줄 왼쪽부터 소니아 소토마요르, 클래런스 토머스, 존 로버츠, 사무엘 얼리토, 엘레나 케이건. 뒷줄 왼쪽부터 에이미 코니 배럿,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커탄지 브라운 잭슨. 사진 출처 미 연방대법원 웹사이트

밴스 부통령이 당선되자 사법부의 위기감은 증폭된 상태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한 연말 보고서에 이렇게 말했다.

“어떤 행정부든 사법 시스템에서 패배를 겪었다. 그럼에도 지난 수십년간 법원의 결정은 대중적 인기와 무관하게 존중받았다. 덕분에 1950~6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쓴 갈등이 더 큰 충돌로 번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정치권 전반에서 일부 선출직 공직자들이 연방 법원의 판결을 공개적으로 무시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불길한 그림자(specter)를 드리우고 있다. 이러한 위험한 주장은 비록 산발적일지라도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우려는 밴스 부통령을 향한 지적으로 해석되며 큰 반향을 얻었다.

11화 요약: 입법부가 트럼프 행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법부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불복할 수도 있다”는 주장으로 정치적 존재감을 키운 ‘예일대 로스쿨 출신 상원의원’ 밴스 부통령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12화 예고: 밴스 부통령이 2021년 출연한 팟캐스트 방송의 진행자 머피는 ‘대안 우파’ 운동의 선봉에 서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발언을 일삼은 논쟁적 인물이다. 트럼프 측 인사들이 즐겨 출연하는 팟캐스트의 면면을 살펴봤다.
#트럼프 행정부#J D 밴스#트럼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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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 2025-02-23 12:16:49

    우리나라 사법부가 같다 인공지능으로 대체할부분은 대체해야 한다 그래야 박통탄핵 이번 탄핵같은 부조리한 불법들이 버젓이 사법부에 으해 행해진다. 아니 우리법 연구회몇놈이 농탕치는 사법부가 제대로 된 사법부냐? 김명수를 사형시켜라 문죄인 이죄명을 구속해라

  • 2025-02-23 15:35:14

    밴스 우리나라로 수입하자! 미국보다 더한 死法부가 대한민국을 소멸시키고 있다!!

  • 2025-02-23 16:19:08

    우리나라도 제대로 된 대통령제로 돌아갑시다. 부통령제도 도입하고.. 판사가 군사훈련에 개입할 수 없다 이거는 기본중의 기본 같네요. 군사사건에 경찰이 수사하고 법원이 판결하는 제도도 잘못 된거 같고.. 국회해산권도 도입이 필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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