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40여명 모조리 살해” 간토학살 日정부 문서 발견

  • 동아일보

일본군, 1923년 ‘지진 업무상보’에
“살기 띤 군중에게 죽임당해” 기록
‘기록없다’는 日정부 주장과 상반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기록이 담긴 일본 육군 구마가야연대구사령부 보고서. 1923년 12월 15일 육군성에 제출됐다. 재일한인 역사자료관 제공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기록이 담긴 일본 육군 구마가야연대구사령부 보고서. 1923년 12월 15일 육군성에 제출됐다. 재일한인 역사자료관 제공
100년 전 발생한 일본 간토대지진 직후 도쿄 등지에서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이 담긴 일본 정부 공문서가 확인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5일 재일동포 단체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등이 설립한 재일한인역사자료관에 따르면 와타나베 노부유키(渡辺延志)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 사료실에서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 40여 명이 일본인에 의해 살해됐다고 기록된 ‘간토지방 지진 관계 업무 상보’를 발견했다. 이 문서는 일본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 서부 지역 병무 및 재향군인 업무를 맡은 ‘구마가야(熊谷) 연대구 사령부’가 작성해 1923년 12월 육군성에 제출됐다.

이 문서에 따르면 간토대지진 발생 사흘 뒤인 1923년 9월 4일 경찰이 경찰서로 이송하던 조선인 200여 명 가운데 40여 명이 살해당했다. 연대구 사령부 측은 이 문서에 “200명 중 110명은 경찰 보호를 받고 호송됐지만 낮에 이동하지 못한 40여 명은 살기를 띤 군중에게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경찰력이 미약했고 군중심리가 발발해 순간적으로 불상사가 발생했다”고 기술했다.

사령부 측은 이 사건을 ‘선인(鮮人·조선인을 비하하는 단어) 학살’ ‘불법행위’ 등으로 표현했다. 사령부는 이어 밤에 조선인을 이송하면 사람이 죽을 수 있으니 밤을 피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기록했다.

와타나베 전 기자는 “일본 정부는 학살 기록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학살 참상을 목격한 당사자들이 정리한 공문서가 정부 내부에 잠들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며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일본 정부의 의지로 존재하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기록이 없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전 관방장관은 올 8월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 입장에 대해 “정부 조사로 한정한다면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 수는 관련 자료마다 다르지만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에는 6661명으로 집계됐다.

#일본 정부#간토학살 문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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