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우크라 젤렌스카 여사 “매번 새로운 공포…아이들 보며 긴 전쟁 견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4일 1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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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언론 최초 동아일보-채널A 공동 대면 인터뷰
“코미디언 출신 남편 힘들어 할 때, 내가 웃기려고 한다”



“온갖 나쁜 일은 겪을 수 있는 만큼 다 겪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매번 전쟁의 새로운 공포를 알게 되네요.”

지난해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열흘가량 앞둔 13일(현지 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수도 키이우의 ‘임시 대통령궁’ 내부 대통령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채널A 공동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쟁을 견뎌내고 있는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젤렌스카 여사는 하르키우시 버스정류장에서 죽은 아들의 손을 4시간 동안 잡고 있던 아버지, 부차 집 마당에 묻힌 어머니 묘지를 지키는 아들, 드니프로시의 파괴된 주택 속에서 청각장애인이라 ‘살려 달라’는 말을 제대로 외치지 못하다 뒤늦게 구조된 여성을 소개하며 “매주, 매일이 비극이다. 우린 계속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그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세계가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길어지는 전쟁의 종식을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대화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또 “6·25전쟁 후 한국의 재건 경험은 우크라이나에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며 “한국이 전쟁 이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도 했다.

러시아 침공의 부당함을 호소할 각종 국내외 행사로 피곤한 기색도 엿보였지만 젤렌스카 여사는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응했다. 그는 “지금 내가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면서 “나는 나의 일을 최대한 정성스럽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이날 낮 키이우의 ‘임시 대통령궁’ 대통령 집무실 앞에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나타났다. 베이지색 정장을 입고 나타난 그는 기자의 푸른색 정장 차림을 보고는 “우리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과 같다”라고 말했다. 처음 접해보는 한국어 통역 인터뷰에 “한국어는 매우 부드럽게 들린다”며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여사의 성인 ‘젤렌스카’는 남편의 성인 ‘젤렌스키’에 여성형 어미 ‘에이(a)’를 덧붙인 형태다. 젤렌스카 여사는 1978년 남편 젤렌스키 대통령과 같은 우크라이나 크리비리흐에서 태어났다. 2003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현재 19세 딸과 10세 아들을 두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고 있는데 힘들진 않는가. 긴 전쟁을 어떻게 견디고 있나.

“어떤 전쟁을 ‘짧은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쟁이 매주, 매일 비극이다. 우리 모두 피곤하고 힘들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살고 싶을 뿐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요즘 (긴 전쟁에 대한) 피로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힘든 순간을 견딘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나.

“전쟁 전에 독서를 많이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안타깝게도 독서는 잡생각을 없애는 데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정말 좋다. 아이들이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도 그렇다. 아이들의 발랄함과 천진함은 현재 우리에게 굉장히 큰 선물이다.”

―남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힘들 때 어떤 말을 해주나.

“가끔 우리 남편을 웃게 하면 남편이 힘을 받는다. 내가 요즘 (코미디언 출신) 남편을 웃기려고 한다. 보통 가족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격려의 말도 한다. ‘힘내’ ‘우리 다 이겨낼 수 있어’란 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는데 가장 두려운 점은 무엇인가.

“가장 위험한 것은 세계가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에게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가 지면 러시아 점령군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린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우리가 부탁하는 만큼 (국제사회가) 도움을 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가.

“너무 좋은 질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나 저한테 ‘대통령 부인이 군사적 도움을 부탁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냐’라고 물었다. 우리를 보호하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내가 부탁해야 한다. 군사적 도움은 제일 필요한 일이다. 침공을 당할 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두 번째로 이제 인적 인프라 복원이 매우 필요하다. ‘사람’이 우선이다. 시민들이 살던 무너진 건물과 학교, 유치원, 병원을 다시 지어야 한다. 세계가 도와줄 수 있다.”



―전쟁 중에 아이들을 키우며 무엇을 중시하고, 어떤 말을 많이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전처럼 완전한 꿈을 꿀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들은 확실히 예전에 우리가 했던 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 ‘확실함’을 아이들에게 전달해야만 한다. 아이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곤 한다. ‘어른들이 너희를 지킬 거야. 그러니 너희들은 안심하고 걱정하지마. 가능한 계속 공부해’라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쟁에 무심해지는 사람이 늘고 있다.

“누군가가 당신의 고통에 무관심해지는 걸 보면 가슴 아프다. 안타깝게도 현대의 전쟁은 검투사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을 관람하는 무대가 아니다. 전쟁이 어떤 순간에 다른 나라에서 발생해서 그들의 시민을 위협할지 모른다.”

―이번 전쟁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숨을 쉬면서) 전쟁은 언제나 긴 법이다. 우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는 우방국의 지원, 우리와 방향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도움에 달려 있다. 한국에서 1950년에 발발한 전쟁(6·25전쟁)을 보더라도, 한국을 침략한 적을 몰아내는 데 도움을 줬던, 다른 나라의 용감무쌍한 파견 군인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없이 진행되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단 한순간도 그 사람을 마주치길 원하지 않는다. 나를 죽이러 온 상대를 그 어떤 누구도 직접 마주하기 싫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으로서 푸틴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뿐이다. 우리에게서 떨어져라.”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길 바라나.


“우리를 잊지 말고 계속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한국은 큰 나라라서 도움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앞선 인터뷰에서 군사적 지원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는 (한국 측의) 대화를 기다리겠다. 또 몇 개월 전 내가 설립한 재단을 통해 한국이 우크라이나 교육 시스템을 도울 수 있다. 아이들이 안전 문제로 온라인으로 공부하는데, 노트북이 필요하다.”

―한국의 전후 재건 과정이 우크라이나에게 참고가 될까.

“한국은 전후 복구에 성공했다.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뤘고 인적자원도 회복했다. 이 같은 경험은 (우크라이나에) 굉장한 의미가 있고 상당히 소중하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한국이 협력을 제안해준다면 우리는 그 제안을 너무나 행복하게 받겠다.”

◇올레나 젤렌스카는 누구

△1978년 우크라이나 크리비리흐 출생

△2000년 크리비리기술대 도시건설관리 전공

△2003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결혼. 1남 1녀

△2003년 TV 예능 제작사 ‘크바르탈95’ 작가로 활동

△2019년 젤렌스키, 대통령 당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가 13일(현지 시간) 수도 키이우에서 동아일보·채널A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친필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 후 한국인들이 보내준 지지에 감사한다며 “키이우에서 7000km 떨어진 곳에 살고 우크라이나인보다 7시간 일찍 해를 맞이하지만 지난 12개월 내내 바로 옆에 있었던 것처럼 느낀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가 13일(현지 시간) 수도 키이우에서 동아일보·채널A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친필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 후 한국인들이 보내준 지지에 감사한다며 “키이우에서 7000km 떨어진 곳에 살고 우크라이나인보다 7시간 일찍 해를 맞이하지만 지난 12개월 내내 바로 옆에 있었던 것처럼 느낀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키이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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