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회담에도 이견 고수한 미·러…“돌파구 없었다”

  • 뉴시스
  • 입력 2022년 1월 11일 0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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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러시아 간 전략 안정 대화가 뚜렷한 합의 없이 종료됐다. 양측은 향후 대화를 지속하기로 했지만,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긴장 고조 등 현안에 이견을 좁히지 못해 이후로도 난항이 예상된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1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전략 안정 대화를 진행한 직후 전화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 측과) 진솔하고 솔직담백한 논의를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세르게이 럅코프 러시아 외무차관과 8시간가량 회담했다.

이번 회담은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 금지에 관한 법적 보장을 요구하고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병력 증강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양측은 나토 확장 문제는 물론 우크라이나 일대 긴장 고조를 두고도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셔먼 부장관은 러시아의 안보 보장안을 거론, “미국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는 것(nonstarter)”이라고 칭했다. 또 “누구도 나토의 ‘개방 정책(open door policy)’을 비난하도록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이번 회담 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밝힌 “개방 정책이 1949년 나토 창립 조약의 핵심 조항”이라는 기조를 되풀이한 것이다. 셔먼 부장관은 또 “우크라이나 없는 우크라이나, 유럽 없는 유럽, 나토 없는 나토 결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긴장 고조 책임론도 명확히 했다. 셔먼 부장관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10만 명 이상 병력을 모았고, 한편으로 우크라이나가 충돌을 추구한다고 한다”라며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계속 전쟁을 부추기는 건 러시아”라고 했다.

그는 또 러시아의 행위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위기를 일으킨다며 “한 국가는 무력으로 다른 국가의 국경을 변경할 수 없다”라고 반복했다. 또 “진정한 진전은 긴장 고조가 아니라 긴장 완화 상황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라고 했다.

러시아가 외교의 길에서 벗어나 침공을 감행할 경우 “상당한 비용과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도 반복했다. 이와 함께 이날 대화를 “서로와 서로의 우선순위, 우려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논의다. 이건 ‘협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측도 자국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럅코프 차관은 같은 날 브리핑을 통해 “나토가 자신 안보를 위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우리 영토(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군사) 훈련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며 “우리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최근 북대서양 동맹과 우크라이나 일부 주, 러시아 인접 지역에서 ‘강력한 확장’이 있었다는 주장도 내놨다. 럅코프 차관은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우리 영토에서 훈련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크라이나 등 나토 가입 반대 입장도 반복했다. 인테르팍스에 따르면 럅코프 차관은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을 거론,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의무, 약속이 아닌 보장을 원한다”라며 “나토 회원국이 돼선 안 된다. 러시아 국가 안보에 관한 문제”라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관련 미국과 나토가 러시아를 협박·위협하려는 어떤 시도도 러시아의 입장에선 수용할 수 없고 어떤 결과도 도출하지 못할 것”이라며 “그런 ‘불장난’은 미국의 이익이 도움이 되지 않고 러·나토 관계에도 ‘급격한 변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이날 회담을 “어렵고, 길고, 매우 전문적이며, 심오하고, 구체적이었다”라며 “어떤 것도 포장하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회피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미국 측이 우리의 제안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깊이 연구했다는 인상을 받았다”라고 평가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오는 12일 브리쉘에서 열릴 나토·러시아위원회,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담을 통해 대화를 이어갈 방침이다. 아울러 미국은 이날 안보 등 현안에 관한 세부 논의를 위해 곧 다시 만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셔먼 부장관은 이와 관련, “군축 협정 같은 복잡한 문제에 관한 협상은 며칠 또는 몇 주 내에 마무리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럅코프 차관은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눈에 보이지 않던 문제를 처음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장장 8시간에 가까운 마라톤회담에도 양측이 이견만 확인하면서 양측의 향후 대화를 두고도 난항을 점치는 시각이 많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과 러시아는 위기 대화 이후에도 교착 상태로 남았다”라고 이번 회담을 평가했다.

WP는 아울러 “미국 외교관들은 러시아의 요구 중 일부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경고해 왔다”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군사 행동을 감행할 빌미를 얻기 위해 미국이 거부할 것을 알고도 조건을 요구했을 가능성을 전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러) 양측은 외교적 돌파구에 관한 모든 기대를 억눌렀다”라고 평가했다. 폴리티코는 양국 회담 이후 “전쟁으로 기우는 분위기는 없었다”라면서도 “평화 역시 없었다”라며 “예전 냉전 시대 라이벌 간의 넓은 간극이 명백해졌다”라고 분석했다.

[워싱턴=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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