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군, 탈레반 다가오자 헬기타려 몸싸움 하다 총격”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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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카불 점령된 날’ 혼란 보도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입성하기 몇 시간 전인 8월 15일 오전, 카불공항 비행장에서 아프간 군인들 간의 난투극이 벌어졌다. 아프간 병사 몇 명이 이륙을 준비 중이던 공군 헬기를 보고 국외로 떠나려는 것으로 오인해 헬기에 막무가내로 올라타려 한 게 발단이 됐다.

헬기 안에 있던 병사들이 이들을 제지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급기야 총성이 울려퍼졌다. 총알은 헬기를 관통했다. 금속 파편이 튀면서 조종사와 병사들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이 헬기를 몰았던 조종사는 “내 얼굴은 피로 얼룩졌다. 병사 한 명이 조종석을 향해 총을 겨누기도 했다”고 말했다.

29일 로이터통신은 아프간 정부 및 군 관계자 24명의 발언을 인용해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기 직전 아군끼리 총을 난사했던 아프간 군인들의 모습을 상세히 보도했다. 로이터는 “이 보도는 한때 (아프간 정부군의) ‘왕관의 보석(Crown jewel)’이었던 공군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며 탈레반에게 중대한 군사적 위협이었던 아프간 공군이 미군 철군과 함께 순식간에 자멸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그날 비행장 총격 사건이 벌어지고 불과 몇 시간 뒤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간 대통령은 가족들과 함께 헬기를 타고 해외로 도피했다. 이후 공군의 ‘엑소더스(대탈출)’가 가속화되면서 병사들과 조종사, 그들의 가족까지 몰려와 비행기에 올라타려 해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한 전직 아프간 공군 장교는 “당시 우리는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회상했다.

가니 전 대통령 도피 과정에서도 아프간군 간에 육탄전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가니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대통령 경호인력 등 54명이 헬기 4대에 나눠 타고 이륙하려 했는데 비행장 경비대 일부 군인들이 헬기 한 대의 이륙을 막아섰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조종사와 경호원, 군인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가니 대통령과 헬기에 있었던 함둘라 모히브 전 아프간 국가안보보좌관은 “헬기가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아프간 군인들이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몰라 빨리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미군은 아프간 공군력 강화를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입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4월 아프간 철군을 선언한 후 지원을 중단하면서 아프간 공군은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했다. 로이터는 “탄약이 바닥나고 항공기가 파손됐지만 고칠 인력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탈레반이 3개월 만에 남서부와 북부 주도를 모두 장악한 뒤 카불 진격을 앞두고 있어 아프간 공군은 사실상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탈레반은 카불 점령 후 ‘미국 지우기’를 명분 삼아 아프간 공군을 색출해 암살했다. 올해에만 조종사 7명이 숨졌다. 과거 아프간 공군 훈련을 지휘했던 데이비드 힉스 전 준장은 로이터에 “여전히 아프간에 남아 있는 수백 명의 공군 조종사 및 관계자들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아프가니스탄#탈레반#총격#카불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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