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자국 묻은 일회용 의료장갑, 새것으로 둔갑시켜 美 대거 수출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입력 2021-10-25 11:15수정 2021-10-2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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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출처=픽사베이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미국이 일회용 장갑과 방호복 등 의료용 개인보호장비(PPE) 공급난을 겪고 있을 당시 이미 사용한 일회용 의료 장갑이 새것으로 둔갑해 미국으로 대거 수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CNN방송은 24일(현지 시간) 수 개월 간의 추적 끝에 이미 사용됐거나 가짜인 일회용 니트릴 장갑 수천만 개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태국에서 미국으로 수입된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니트릴 장갑은 합성고무 소재인 NBL(니트릴 라텍스)을 이용해 만든 일회용 장갑으로 의료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사용된 이 장갑들은 태국으로 넘겨진 뒤 세척되고 드라이어에서 말려진 뒤 재포장돼 수출용 새 상품으로 둔갑했다. 지난해 12월 태국 보건당국 단속반이 방콕 교외의 이런 시설들을 급습했을 당시 제품들에는 먼지가 묻어있거나 심지어 핏자국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창고 한 쪽에서는 장갑들이 새 것처럼 보이도록 염색하기 위해 파란색 염료를 풀어놓은 플라스틱 대야도 발견됐다. 이중 일부는 올해 7월까지도 계속 수입됐다고 한다. CNN방송은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미국과 태국 당국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마이매미에서 활동해온 무역업자인 타렉 커센은 지난해 말 200만 개의 장갑을 태국에서 수입해 유통회사에 넘겼다가 곤욕을 치렀다. 거센 항의를 받고 직접 현장에 나간 그는 컨테이너에서 화물을 직접 들여다보다가 장갑들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일부 장갑에는 핏자국까지 있었고 어떤 것은 2년 전 날짜 표시가 돼 있었다”며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고 CNN방송에 토로했다. 그는 결국 유통회사들에 돈을 환불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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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올해 2월과 3월 이런 신고를 받았으나 검역 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발병 이후 의료용 보호장비에 대한 수입 규정이 한시적으로 완화 혹은 적용 중단된 상태여서 철저한 적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인 더글러스 스테인 씨는 “이 니트릴 장갑들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상품이 돼 버렸다”며 “조사당국이 보고 있는 것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일부일 뿐”이라고 했다. 이런 불량상품들은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로도 수출돼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FDA는 올해 8월이 되어서야 이 태국회사 제품에 대해 통관을 보류하라는 경보를 각 항만에 보냈다. 관세국경보호청(CBP)은 지금까지 4000만 개의 가짜 마스크와 수십만 개의 다른 개인보호장비들을 압류했지만 의료 장갑의 양을 따로 추적해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태국 보건당국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대응은 역부족이다. 의료용 장갑의 수요가 아직 전 세계적으로 높다 보니 싼 값에 이를 구하려는 수요가 넘쳐나고 이를 노리는 업자들의 불법행위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 것으로 속여 파는 장갑으로 얻는 수익은 수십 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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