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돌격소총으로 구타”…혼란으로 가득찬 카불 공항 정문 앞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9일 20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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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아비규환이다. 공항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채찍과 돌격소총으로 두들겨 맞는다.”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탈레반이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현지인들을 상대로 총을 쏘고 폭행을 가하면서 출국을 막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 가디언 등이 18일 보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으로 가기 위해 검문소를 통과하려던 아프간 여성과 어린이가 탈레반에게 구타와 채찍질을 당해 머리를 다치고 피를 흘렸다. NYT도 “탈레반이 공항으로 가는 도로를 통제하고 수많은 검문소를 설치해 외국인이 아닌 현지인은 공항에 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며 “카불 공항으로 가는 길은 탈레반으로 인해 위험과 혼란으로 가득하다. 공항까지 안전한 통행을 담보하겠다던 탈레반의 약속이 하루만에 무너졌다”고 전했다.

아프간 사람들이 공항으로 몰려드는 건 현재 아프간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은 카불 공항이기 때문이다. 아프간 전역을 탈레반이 통제하고 있어 이웃국가와 통하는 육로 국경은 사실상 막힌 상태다.

공항 내부는 미군 통제하에 있지만 공항 밖은 탈레반 관할이어서 공항으로 가려면 탈레반이 설치한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힘들게 검문소를 통과해 공항 앞까지 도달해도 위험은 남아 있다. NYT에 따르면 탈레반의 폭력과 총격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공항 정문 앞이다. 공항 정문으로 향하는 길 양쪽으로는 철조망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수백 명의 현지인들이 공항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무장한 탈레반 대원들은 이들을 상대로 나무 몽둥이나 칼라시니코프 돌격소총, 호스로 두들겨 패거나 공중에 총을 쏘며 위협하고 있다. NYT는 총을 어깨에 멘 탈레반 대원들이 “이 문은 막혔다. 외국인과 허가 서류 소지자만 지나갈 수 있으니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다고 전했다.

탈레반들은 “외국인은 예스(Yes), 아프간인은 노(No)”라며 통행 허가증을 발급받은 현지인들의 출국까지 막고 있다. 한 남성은 CNN방송에 미국 영주권을 보여주면서 “나는 이미 미국 대사관에서 입국 허가증까지 받았지만 탈레반은 ‘우리는 모른다.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쫓아냈다”고 하소연했다. 모든 허가 서류를 갖췄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남성도 “탈레반이 ‘카불에 있으라’고 하면서 공항에 못 들어가게 했다”고 전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현지인들의 출국을 막으면서 이날까지 미국이 아프간에서 대피시킨 인원은 5000명으로 하루 8000명을 대피시키겠다는 목표에 크게 못미쳤다. 아프간에는 현재 1만 명의 미국인과 미국 협력 아프간인 8만 명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이 공항을 둘러싼 통제를 강화하면서 사망자도 발생했다. 19일 로이터는 탈레반 관계자를 인용해 15일부터 이날까지 카불공항 안팎에서 12명이 총에 맞거나 인파에 밟혀 숨졌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은 공항 근처에서 사망한 사람이 40여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탈레반이 서방을 도운 아프간인을 데려가려는 해외 정부와 몸값 협상을 벌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빌트지는 탈레반이 향후 서방에 협력한 아프간인의 출국을 허용하는 대신 해당 국가에 몸값을 요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독일 국방부가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보도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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