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아프간 철수 성급했나… “이르면 한달 내 탈레반에 수도 함락”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2일 11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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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에 함락된 아프간 쿤두즈.
탈레반에 함락된 아프간 쿤두즈.
이슬람 무장 반군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이 예상보다 일찍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미 정부 관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의 세력 확장은 예견된 일이지만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경고다. 일각에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아프간 출구 전략이 다소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 한 당국자를 인용해 아프간 수도 카불이 90일 이내에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당국자들은 수도 함락이 한 달 이내에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당초 미 정보당국은 카불 함락이 6~12개월 이내에 벌어질 것으로 봤지만 아프간의 상황이 그보다 훨씬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이 사안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모든 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CNN방송은 이날 행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카불이 30~60일 안에 함락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지난 며칠 간 최소 9개의 지방 도시를 정부군으로부터 빼앗았다. 이들은 카불의 북부 지역에 위치해 카불 진격의 교두보가 될 수 있는 바글란 지역도 점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탈레반이 이미 아프간 전 국토의 65%를 점령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의 공세가 거세지자 미국과 영국, 인도 등은 아프간 내에 남아있는 자국민들의 긴급 철수를 권고했다. 미국은 카불에 있는 대사관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도 고민하고 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아프간은 분명히 도전적인 안보 환경”이라며 “매일 같이 위협을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프간의 상황이 최악으로 가고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8월 말까지 미군을 전부 철수시키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철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그곳에서 수천 명을 잃었다. 그들(아프간)이 자신을 위해, 그들의 국가를 위해 스스로 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런 미국의 태도는 또 다른 ‘실패 국가’의 탄생을 손놓고 지켜보는 무책임한 결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1년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했다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발호한 것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미국이 베트남전 패배의 전철을 다시 밟는 꼴이라는 분석도 한다. 공화당의 밴 새스 상원의원(네브래스카주)은 성명에서 “우리가 아프간을 포기한 이상 탈레반이 승리해 여성들을 짐승처럼 다루고 테러리스트에 피난처를 제공해도 놀라워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군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고 주장한 이후, ‘이젠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는 차가운 태도로 돌아섰다”고 지적했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아프간의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악화되는 안보 상황을 유념하고 있으며 아프간군을 지원하는 것에 우리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2001년 탈레반을 축출하고 아프간에 민주정부를 수립한 미군은 그 후 20년 간 국가 재건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아프간의 상황이 좀처럼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이 긴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자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8월 말까지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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