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진단 주변에 알리자… 삶이 더 풍요로워졌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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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이 취재한 일본 시도타니씨의 극복 사례

치매 환자 시도타니 도시유키 씨(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쿠이쿠 히로바’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나무를 잘라 계단식 의자를 만들고 있다. 다키자와 미호코 기자
치매 환자 시도타니 도시유키 씨(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쿠이쿠 히로바’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나무를 잘라 계단식 의자를 만들고 있다. 다키자와 미호코 기자
치매 환자인 시도타니 도시유키(志度谷利幸·69) 씨는 “치매 진단을 받은 뒤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2년 전까지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해 왔던 그는 부인 히사미(久美·70) 씨와 함께 일본 가가와(香川)현 아야가와(綾川)정에 살고 있다. 40년 전 개발된 뉴타운인 이곳 주민 대부분은 1947∼1949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단카이(團塊) 세대’다.

시도타니 씨는 아침 일찍 이웃들과 라디오 체조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들과 같이 농사일을 하거나 탁구를 치기도 한다.

그는 5년 전 의사에게 ‘초기 알츠하이머형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를 회상했다. 시도타니 씨는 “나는 원래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치매 진단을 받은 뒤 첫 6개월은 정말 우울했다”며 “내 인지 기능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실내 마감공사 일을 했던 그는 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도면을 확인하면 작업 중간에 도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쉽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뒤로는 도면이 잘 생각나지 않아 작업 도중 여러 번 확인하고 있다. 고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2년 전부터 큰 규모의 주문은 받지 않는다. 그는 “다음에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하니 두려웠다”고 말했다.

일이 줄어든 이후 개를 산책시키며 시간을 보냈던 시도타니 씨는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역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던 차에 이웃이 중증 환자, 장애인 등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지역 포괄지원센터 방문을 권유했다.

센터에서 만난 미이 유키코(三井雪子·70) 씨는 시도타니 씨를 위해 자발적으로 ‘이쿠이쿠 히로바(育育廣場)’라는 동아리를 조직했다. ‘건강한 사람과 치매 환자 모두에게 친화적인 공동체를 만들자’는 목표를 가진 이 동아리에는 시도타니 씨의 일상생활을 돕기 위해 같은 동네에 사는 70대 이웃 15명이 참여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오전 2시간 동안 지역 보육지원 센터의 빈 교실에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한다. 서로의 농사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이들은 계단식 의자를 만들고 있었다. 나뭇조각 톱질을 마친 시도타니 씨는 자신의 톱질 기술을 뽐냈다. 동아리 회원들은 인사를 주고받을 때 서로의 건강 상태를 꼼꼼히 살피는 등 서로를 도왔다. 미이 씨는 이 활동이 치매에 걸리지 않은 구성원들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도 언젠가 치매에 걸릴 수 있다”며 “치매 환자를 도우면서 동시에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시도타니 씨는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야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회원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나는 치매 진단을 받은 직후부터 이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며 “그렇게 해야 주변 사람들에게 치매 증상에 대해 둘러댈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점점 무언가를 깜빡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는 어려움 없이 삶을 즐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 병에 익숙해질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기타무라 유키코 기자

번역·정리=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치매#아사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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