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버핏’ 시장 우려 의식
“현재 명성 버크셔해서웨이 것… 나에게 의존한다 생각 안해”
주총서 투자자 불안 달래기
“난 수십 년간 반(半)퇴직(semiretired) 상태였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88)이 5일(현지 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농담 섞인 말투로 이렇게 밝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날 보도했다. 그는 “사실 (반퇴직 상태였어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도 말했다. 회장에 최고경영자(CEO)까지 맡고 있는 그가 은퇴하면 기업이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메시지였다. 투자자들은 ‘버핏 회장이 여전히 기업을 좌우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그의 후계 경영진이 주요 의사결정을 잘 처리하고 있다고 강조한 셈이다.
버핏 회장은 남다른 투자 혜안으로 버크셔해서웨이를 유통, 철도, 제조 등 다양한 사업을 아우르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2011년만 해도 “우리 회사에는 CEO가 될 만한 사람이 4명”이라고 말해 후계자에 대한 묘한 궁금증을 낳았다. 그러다 올해 1월 그레그 에이블 에너지부문 회장(56)을 그룹 전체의 비보험(non-insurance) 총괄부회장으로, 아지트 자인 재보험부문 부사장(67)을 보험 부회장으로 각각 승진시키며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이라고 발표했다. 버핏 회장은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후계 후보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시험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무리 후계자를 엄격히 선발하더라도 그가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 ‘포스트 버핏’ 시대의 버크셔해서웨이는 예전만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버핏 회장은 이번 주총에서 투자자들의 우려를 의식한 듯 “현재의 명성은 (내가 아닌) 버크셔해서웨이의 것이다. 그 명성이 나와 찰리 멍거 부회장에게만 의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WSJ에 따르면 이날 주총장에는 4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주총장 입구에서부터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긴 줄이 이어졌다. 버핏 회장이 등장하자 수많은 취재진과 투자자들이 그에게서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들고 그를 에워쌌다. 사람들은 주식시장을 출렁이게 만들 수 있는 그의 투자 계획이나 기업 경영방침 등에 대해 여러 질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후계 문제에 대한 질문이 핵심적인 내용이었다고 WSJ는 설명했다.
버핏 회장은 이날 “내가 (아마존 CEO인) 제프 베이조스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베이조스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해냈는데, 난 기적과 가까운 일이라 생각할 때마다 그 일에 투자하질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게 문제”라며 자신의 오판을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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