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지하철 폭발 배후도 IS? ‘중앙아시아 태생 남성’ 주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4일 16시 55분


코멘트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로 시리아 무장단체에 연계된 중앙아시아 태생 23세 남성.’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테러가 발생한지 하루 만에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범인이 중앙아시아 태생으로 밝혀지면서 이 지역 용병을 대거 고용해온 이슬람국가(IS)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당초 러시아 경찰은 범인이 지하철에 폭탄이 든 물체를 두고 내렸다고 추정했지만 수사 결과 자살 폭탄테러로 기울고 있다. 경찰은 여성 1명이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추적 중이다.

러시아 당국은 사상자의 상태로 봤을 때 범인이 파편 등 위험 물질을 가득 채운 물체를 몸에 지니고 있다가 터뜨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폭발물은 유리 파편을 가득 채운 소화기와 쇠구슬로 가득한 서류 가방이라고 영국 더타임스가 4일 보도했다. 당초 일부 러시아 언론은 길고 검은 수염을 기르고 온 몸에 검은 옷을 두른 남성의 지하철역 폐쇄회로(CC)TV 화면을 공개하며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보도 후 이 남성이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 자신은 무고하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범인이 IS를 비롯해 시리아 반군, 체첸 반군 등에 몸담았을 가능성을 폭넓게 수사하고 있다. 구 소련 붕괴 이후 불안정한 체제와 사회 불만 득세를 틈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적극적으로 모병을 펼쳐온 IS의 소행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체첸 반군 상당수도 IS에 투신해 시리아와 이라크로 건너갔다.

올해 1월 1일 터키 이스탄불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테러를 저지른 압둘가디르 마샤리포프(34)도 우즈베키스탄 출신 IS 병사였다. 4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중앙아시아 산지에서 철저한 군사훈련을 받고 터키로 파견됐다. 지난해 6월 터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자살폭탄 테러범 3명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다게스탄 출신이었다.

러시아에 원한이 깊은 시리아 반군의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리아 반군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정부군을 전복시키기 직전까지 갔다가 러시아의 내전 개입으로 경제수도 알레포를 빼앗겼다. 지난해 12월 시리아 반군에 경도된 터키 경찰 메블러트 메르트 알틴타스가 안드레이 카를로프 주터키 러시아 대사를 총격 암살한 바 있다. 하지만 범인이 중앙아시아 출신이라는 점으로 볼 때 일탄타스처럼 자생적 테러리스트라기보단 테러를 위해 파견됐을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일각에서는 일부 친정부 인사를 중심으로 이번 테러가 지난주 러시아 일대를 휩쓸었던 반정부 시위와 연관됐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테러 사망자가 11명으로 늘어났고 부상자는 51명이라고 타스 통신이 4일 보도했다. 이 중 4명은 장기와 뇌손상 등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라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 두 지하철역 사에 터널에서 테러를 당한 전동차의 기관사가 폭발 이후에도 다음 역까지 운행을 계속한 덕에 구조작업이 수월해져 많은 목숨을 살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테러 당일 테흐놀로기체스키 인스티투트 지하철역을 찾아 입구에 빨간 꽃을 헌화했다.

사건 발생 20분 뒤인 3일 오후 3시 테러 현장과 불과 3km 떨어진 지하철역인 플로샤드 바스스타니야역 비상탈출구에서도 파편으로 가득한 사제폭탄이 발견돼 반테러 당국이 직접 해체했다. 이 폭탄은 TNT 200~300g 규모로 테러 현장에서 쓰인 폭탄보다 몇 배 더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당국은 4일 오전 10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노선 운행을 재개했다.

러시아는 내년 6월 러시아월드컵의 리허설격으로 두 달 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4개 도시에서 열리는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하고 있다. 이 대회 개막식과 폐막식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릴 예정이다. 비탈리 무트코 러시아 부총리는 “향후 예정된 국제 스포츠 행사 준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데 이 비극을 이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