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현수]한국의 패션 정치학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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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부 기자
김현수 산업부 기자
 무슨 옷을 입을지 참 궁금했다. 미국의 새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취임식에서 입을 옷 말이다. 취임식 전 전례 없는 논쟁이 미국 패션업계에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 부인의 옷에 관여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다. 그간 대통령 취임식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은 영광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적, 인종적 차별 발언은 디자이너들의 반발을 샀다. 마크 제이컵스 등 인기 디자이너는 대통령 부인의 옷을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논란 속에 멜라니아 여사는 20일(현지 시간) 랠프로런을 택했다. 미국 디자이너 랠프 로런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다. 게다가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의 협조자로도 유명하다. 이날 취임식에 참석한 클린턴도 랠프로런의 하얀색 바지 정장을 입었다. 치열하게 싸우던 양당이 미국적 가치의 상징인 랠프로런으로 ‘대동단결’한 것처럼 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미 언론도 이날만큼은 백악관 안주인의 패션에 호의를 보였다. 뉴욕타임스는 “멜라니아는 취임식 패션을 통해 퍼스트레이디 패션이 어떤 의미인지 ‘공부’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패셔니스타’ 미셸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이 백악관 입성 후 첫 1년 동안 만들어낸 패션산업의 부가가치가 27억 달러(약 3조1563억 원)에 달한다고 2010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보도한 바 있다. 미국 패션계가 미셸 여사와의 이별을 얼마나 아쉬워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미심쩍게 보던 트럼프가(家) 여성의 영민한 ‘패션 정치학’에 미 패션업계는 다시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미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고 있자니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떠올랐다. 당시 한국의 패션담당 기자들도 새 대통령의 옷에 주목했다.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그가 택한 옷에는 그만의 철학과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옷은 누구 작품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한국 패션계 인사들에게 물었더니 “짐작도 안 간다”는 말이 돌아왔다. 패션은 개인의 취향이자 이를 외부에 표현하는 창인데 왜 비밀에 부칠까 궁금했다. 박 대통령의 ‘스타일리스트’가 최순실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충격과 함께 ‘그래서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패션에 메시지를 심은 주인공이 최 씨였으니 어떻게 공개할 수 있었을까.

 대통령의 옷을 취재하던 중에 한 국내 원로 디자이너가 말했다. “대통령이 한국 디자이너 옷을 입었다고 해외에 자랑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통령이 자국 패션산업을 위해 홍보대사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뜻에서 한 말이다. 여기에 전략적 메시지까지 담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패션 정치학’은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가뜩이나 패션은 옷 로비 사건과 같은 뇌물 스캔들 등 부정적 인식이 강한 편이었는데 또다시 좋지 않은 인상이 더해져 버렸다. 패션을 소통의 도구이자 주력 산업의 하나로 이해하고 이를 활용할 리더를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
 
김현수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멜라니아#랠프로런#아메리칸 드림#패션 정치학#비선 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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