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목사 딸 “트럼프시대는 왔다가 가는것… 정의 위해 싸워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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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D-2]美 흑인들, 트럼프 취임식 앞두고 착잡

 “과연 이분 말씀대로 산더미 같은 절망에서 희망이라는 돌을 찾을 수 있을까요?”

 16일 오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인근 마틴루서킹 기념관에서 만난 앤서니 그레그 씨는 킹 목사의 석상 옆에 새겨진 그의 대표 어록을 가리키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로 흑인인권운동의 상징이 된 킹 목사의 생일을 국가기념일(1월 셋째 주 월요일)로 지정한 지 31주년이 되는 날을 맞아 1도 안팎의 날씨에도 그레그 씨를 포함한 추모객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1시간 넘게 운전해 이곳을 찾은 그레그 씨는 “나 같은 흑인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8년 동안 희망을 찾길 바랐지만 여러 번 좌절했고 지난해 대선에서 아예 쓰러졌다. 대놓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온 도널드 트럼프가 나흘 뒤 이 기념관 앞에 있는 집(백악관)의 주인이 된다. 처음엔 화가 났는데 이젠 서서히 두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곳을 찾았을 때보다 흑인 추모객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오전에 열린 공식 행사 참석자는 90%가량이 흑인이었다. “우리끼리라도 뭉쳐야 한다”는 무언의 시위로 보였다. 킹 목사 기념관에서 5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수전 멜로니 씨는 “기념일마다 관람객을 안내해 왔는데 오늘은 표정들이 유독 침울해 보인다. 하늘처럼 먹구름이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인근 버지니아 주에서 온 제프리 그레이엄 씨는 “트럼프가 킹 목사와 인권운동을 했던 민주당 존 루이스 하원의원에게 ‘오로지 말뿐이고 행동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세상이 됐다”며 트럼프와 루이스의 14일 설전을 상기시켰다. 이어 “트럼프 비판이 능사가 아닌 것은 안다. 킹 목사도 ‘어둠은 오로지 빛으로, 증오도 사랑으로만 지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도 했다.

 하지만 일부 추모객은 실낱같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에이미 커티스 씨는 “대선 때의 트럼프보단 지금의 트럼프가 그나마 나아졌다”며 “미국이 대통령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님을 트럼프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시간, 킹 목사의 고향인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그의 딸 버니스 킹도 “도널드 트럼프의 시대는 어차피 왔다가 가게 된다. 백악관의 주인이 누구든 상관없이 사랑과 정의를 위해 계속 싸워 나가자”며 희망을 역설했다.

 트럼프 당선인도 취임을 코앞에 두고 자신과 루이스 의원 간의 설전으로 흑인 사회의 반감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듯했다. 그는 이날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로 킹 목사의 장남인 시민운동가 마틴 루서 킹 3세를 초대해 1시간가량 면담했다. 트럼프타워 로비에서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킹 3세는 면담 후 기자들에게 “생산적인 대화를 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미국인 전체를 대표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다”면서도 “앞으로 (그의 발언과 행동을) 지켜보며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흑인인권운동가인 알 샤프턴 목사는 면담 소식을 접한 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당선인의 책임은 악수하는 사진 촬영 따위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당초 이날 워싱턴에 있는 흑인역사문화박물관을 방문하려다 경호상의 이유로 킹 3세와의 면담으로 대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가 킹 목사 기념관 인근의 이 박물관 앞에 갔더니 몇몇 흑인 방문객들은 “트럼프가 온다던데 그가 여기 올 자격이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미국 사회는 내년 마틴 루서 킹 기념일에 트럼프를 어떻게 평가할까.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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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 2017-01-18 20:30:03

    트럼프가 누구처럼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파괴했나 무당 데리고 국정을 농단했나 기업들 협박하고 뇌물을 받았나 블랙리스트 작성하고 문화예술언론계를 통제하려고 했나. 그저 백인보수일뿐이다. 오히려 힐러리보다 이 놈이 핵으로 정은이를 정밀 타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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