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미국 공화당의 재앙, 트럼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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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혀를 차고, 욕을 하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못하는 게 막장 드라마다. 어떤 반전이 있을지 몰라 끝까지 조마조마하다. 11월 8일 미국 대통령선거가 꼭 그렇다. 역대 대선 후보와는 너무 다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황당한 언행과 자질 논란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지만 어쩌다 미국 정치가 이 지경으로 희화화됐는지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다. 9일(현지 시간) 트럼프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2차 TV 토론도 ‘음담패설’ 동영상이 공개돼 궁지에 몰린 트럼프의 해명이 관전 포인트였다.

 ▷트럼프는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하면서도 “라커룸 발언”이었다고 주장했다. 탈의실에서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잡담 수준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말에 그쳤지만 클린턴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행동으로 여성을 욕보였다며 과거 스캔들을 들춰냈다. 이에 클린턴은 “그들이 낮게 가면 당신은 높게 가라”는 퍼스트레이디 미셸 여사의 조언을 상기시키는 절제된 대응으로 넘어갔다. 남편도 성 추문 전력이 있으니 이전투구를 벌여 봤자 득이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노예제도를 폐지한 수정헌법 13조 통과를 위해 사람에 따라 다른 논리로 설득한 것을 놓고도 두 후보는 충돌했다. 클린턴이 “대통령 리더십을 보여준 훌륭한 사례”라고 치켜세우자 트럼프는 “링컨은 거짓말한 적이 없다. 그 점이 당신과의 큰 차이점”이라고 공격했다. 클린턴이 정치적 이중성에 대해 링컨을 예로 들어 해명하는 것을 꼬집었지만 트럼프가 정직성의 상징이자 공화당의 상징인 링컨을 거론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트럼프가 1차 TV 토론 때보다는 선전했다고 해도 공화당에선 음담패설 파문에 충격받은 주요 정치인들이 대거 지지를 철회하거나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는 작은 정부, 자유무역, 국가·교회·가족 공동체의 통합과 유지 등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중시하는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거침없이 했다. 동반 추락을 고민하는 공화당뿐 아니라 미국의 보수주의 진영에 트럼프는 재앙이 되고 있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미국 대통령선거#트럼프#힐러리#tv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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