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개천에서 나온 용’들의 哭聲

  • 동아일보

아이비리그 진학한 저소득층 자녀, 식비-책값 등 생활비에 허덕

미국 뉴욕의 명문대인 컬럼비아대 3학년인 멕시코 출신 이민자 리스베트 페냐 씨는 학교 식당에 후식으로 놓여 있는 사과, 배 등을 가방에 숨겨 가져온 뒤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 1학년 때는 삼시 세끼를 기숙사에서 모두 먹었지만 지금은 돈이 없어 혼자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가 많다. 코넬대가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부생 중 22%가 돈 때문에 식사를 부실하게 하거나 아예 거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WP)는 17일 미국 전체 대학 학부생의 24%를 차지하는 저소득층 출신들의 빈곤 문제가 교육계의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생활비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는 아이비리그(하버드, 예일 등 미국 동부 명문 8개 대학) 학생들을 집중 조명했다.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아이비리그는 다양성 차원에서 우수한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연 6만 달러가 넘는 학비를 면제해주면서 입학 허가증을 주고 있지만 식비와 책값 등 생활비가 만만찮아 입학 후 4년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아이비리그에 들어온 ‘개천에서 나온 용’들의 곡(哭)소리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아이비리그 학생 중 18% 정도는 부모가 대학을 다니지 못한 저소득층 집안 자녀들이다.

하버드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앤서니 에이브러햄 잭 씨 역시 애머스트대 학부생일 당시 돈이 없어서 땅콩 잼과 젤리만 먹으며 일주일을 버틴 적이 있다. 기숙사 식당이 문을 닫는 방학 땐 외부 식당에 갈 돈이 없어 굶은 적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하버드대는 2014년 이런 학생들을 위해 겨울방학과 봄방학 동안 학교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식사 바우처(무료 쿠폰)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이비리그 재학생 라파엘 라미레스 씨는 주당 10시간 이상 아르바이트를 해 고향에 생활비를 부쳐야 하는 고학생이다. 책값을 아끼려고 500쪽이 넘는 전공서적을 일일이 복사본으로 만들어 쓴다.

일부 여학생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파는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크리스티아 머서 컬럼비아대 철학과 교수는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한 학생들 중엔 성관계를 맺는 대가로 돈을 주는 ‘슈거 대디(sugar daddy)’를 만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학생들이 ‘얻어먹기’를 할 수 있는 ‘CU Meal Share(식사공유)’ 페이스북 페이지도 생겼다. 여유가 있는 학생이 페이스북에 식사 장소와 시간을 올리면 얻어먹으려는 학생이 답변하는 방식이다.

WP에 따르면 아이비리그 학생들은 연간 생활비 최소 2062달러(약 244만 원), 교재비 1223달러(약 144만 원)를 자비로 부담한다. 여기에 인맥을 쌓기 위한 클럽활동비도 추가된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2000년대 중반부터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대학 문을 활짝 열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아이비리그 입성은 장애물 하나를 넘은 것에 불과하다. 수많은 난관이 학생들을 첩첩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아이비리그에서는 저소득층으로 대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퍼스트제너레이션조합’이 등장했다고 보스턴글로브는 전했다. 이 조합 소속 테드 화이트 씨(하버드대 3학년)는 “가정 형편에 따라 대학 생활 출발점이 전혀 다르다”며 “저소득층 자녀가 안정적인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아이비리그#저소득층#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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