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현지, 투자 요청 빗발… 중동시장 선점했지만 본계약까지 과제 많아
韓 기술력과 현지 인력 결합한 효율적인 프로젝트 필요
정부는 콘텐츠 한류화 지원하고 기업의 경쟁력 극대화해야
김재홍 KOTRA 사장
“상품만 팔려고 하는 외국 기업에는 별 관심 없어요. 이란 업체들과 함께 제품을 생산하지 않거나 이란에 투자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많이 찾아와도 냉담할 겁니다.”
올 3월 민관합동사절단으로 처음 방문한 데 이어 이번에 경제사절단으로 다시 이란을 방문했던 필자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이란 정관계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기업들의 투자를 강하게 요청했다. KOTRA와 투자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란투자청의 모하마드 하자에 청장은 한국은 우수한 상품으로 이미지가 좋지만 투자에 인색했다면서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는 투로 대놓고 말했다.
이란 시장은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많다. 이번 정상회담은 ‘제2의 중동 붐’의 한 축인 이란 시장을 선점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양자 협정·MOU 총 66건(경제 분야 59건) 체결, 총 371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추진 참여는 역대 최대의 경제외교 성과다. 하지만 일각에서 지적하듯 MOU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탓에 이런저런 대내외적인 변수가 생기면 무산될 수도 있다.
MOU를 맺은 프로젝트들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려면 치밀한 후속 조치가 필수다. 큰 틀에서 쌍방이 원칙적 합의에 이른 것인 만큼 사업 진행을 위한 점검 및 협의 과정에서 높은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란은 중국의 만만디에 비견되는 ‘야바시(Yavash)’ 문화가 있어 계약 지연을 통해 유리한 협상 고지를 점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이 성급하게 나섰다가 이런 전략에 휘말리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협상에 임하길 권고한다.
이번에 우리 기업들이 MOU를 체결한 프로젝트는 이란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제6차 5개년 개발계획(2016∼2020년) 및 에너지 재건 사업과 직결되는 것들이라 모두 사업성이 크다. 그런데 현지의 안 좋은 재정 형편 탓에 대부분 파이낸싱 해결을 조건으로 하고 있어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총 250억 달러의 금융 지원을 하기로 했다. 우리 기업들이 정부 재정 지원을 등에 업고 치밀히 준비하면 수주 전망이 밝다고 생각한다.
한국 기업에 대한 좋은 이미지도 이들 프로젝트 수주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 같다. 현지의 정부 관계자들은 대림 등 우리 기업들이 경제 제재에도 철수하지 않았던 것에 신뢰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와 우선 협상하겠다면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제조업 육성 정책을 추진하는 이란은 한국 기업의 기술과 자본에 현지 인력 및 시장을 결합하는 조인트벤처(JV) 형태의 진출을 희망하고 있으므로, 이를 산업재 분야 중소기업들의 진출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들이 겪는 애로 해소에도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기업들은 중소 규모 거래에 대한 원화결제시스템의 이용 애로, 사물인터넷 같은 신산업 분야의 규제, 콘텐츠 현지화를 위한 세제 지원 등에서 많은 애로를 느끼고 있는 만큼 정부가 세심하게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일대일 비즈니스 상담회의 후속 사업을 꼼꼼히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상담회는 현지 양대 완성차 업체인 이란호드로(IKCO)와 사이파(Saipa),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레파(Refah) 등 대표 기업들이 대거 참가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현지의 한 화장품 수입업체는 “한국 드라마 인기로 한국 화장품의 취급을 늘리려고 600km 떨어진 곳에서 테헤란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주얼리 업체인 M사는 이번에 현지 진출에 성공했는데 이란 바이어는 “처음 접한 한국 제품은 유럽 제품보다 디자인이 섬세하고 뛰어나다”며 감탄했다.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개방된 나라이고, 한류와 한국산 상품에 대한 인기도 높다. K뷰티나 패션·섬유 등 우리 중소기업의 소비재 분야가 진출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지 벤더(vendor·판매업자) 및 유통업체와 파트너십을 구축해 이란은 물론이고 인근 시장까지 진출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
이번 정상외교를 계기로 이란이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수출로 경제 회복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우리로선 절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이란이 ‘제2의 중동 붐’의 진원지가 되도록 정부와 기업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서 뛰어야 한다.
김재홍 KOTRA 사장
※지난 6년간 오피니언 면에 게재되어온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주필의 칼럼 ‘동경소고(東京小考)’는 필자의 타계로 더 이상 연재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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