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위스키 한잔합시다”… 야당 지도부와 수시로 대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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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에도 레임덕 없는 비결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데도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이 아니라 ‘마이티 덕(mighty duck·강한 오리)’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AP통신과 여론조사 기관인 GfK가 3월 31일∼4월 4일 미국 성인 10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호감도 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53%로 대선 경선 후보 5명보다 호감도가 훨씬 높았다. 양당의 선두주자인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40%,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는 26%에 불과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9일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의 업무지지도는 50%로 지난해 12월(44%)보다 6%포인트 올랐다. 임기 만료를 코앞에 두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인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오바마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다. 2014년 11월 한국 총선에 해당하는 중간선거 결과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 양원의 다수를 차지해 여소야대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오바마는 여소야대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기에 지지율이 고공행진할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야(對野) 소통이다. 오바마는 스스로 “나는 수줍음이 많은(shy) 성격”이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골프도 정치인과는 거의 치지 않는다. 16일에도 백악관 참모들과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 내 골프장에서 라운딩했다. 하지만 필요하면 전화 통화와 개별 면담, 식사 등을 통해 기꺼이 야당 지도부와 접촉한다.

가장 자주 접촉하는 야당 인사는 정적(政敵)인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다. ‘다스베이더’(영화 스타워즈의 악역)라는 별명을 가진 냉혹한 승부사다. 그런 그에게 오바마는 수시로 “당신 지역구(켄터키 주)에서 유명한 버번위스키 한잔하자”고 제안한다.

지난달 1일에는 매코널과 척 그래슬리 상원 법사위원장(공화당) 등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점심을 먹으면서 당시 공석인 연방 대법관(현재 메릭 갈런드 지명) 문제를 논의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오바마는 갈런드 대법관 지명 후 인준청문회 개최를 위해 공화당 상원의원 10여 명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오바마 전화를 받은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후임 대법관을 지명하는 데 반대하지만 갈런드 지명자를 만나는 보겠다”며 성의를 보였다.

2월 2일에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매코널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스테이크를 썰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의회비준 문제를 협의했다.

오바마는 수시로 대국민 메시지를 내고 우호적 여론을 만들어낸다. 매주 일요일 주례연설은 기본이고 일만 생기면 기자회견을 열고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직접 브리핑에 나선다. 의례적인 기자회견이 아니라 백악관 출입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면서 치열하게 토론을 한다. 국내 정치 외교 안보 대통령의 주변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주제에 제한이 없다. 이 모든 장면은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미 전역에 생중계된다. 13일에는 백악관 인근 버지니아 랭글리에 있는 중앙정보국(CIA)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 등과 ‘이슬람국가(IS)’ 격퇴 전략을 논의한 뒤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대국민 브리핑을 했다. 우리로 치면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방문 후 현장에서 바로 기자회견을 한 셈이다.

지난해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흑인교회 총기난사 희생자 영결식장의 추모 연설은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가 사회 갈등 치유의 계기가 됐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는 미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선창하며 단합을 외쳤고, 6000여 명의 참석자는 피부색을 떠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오바마는 자신만의 이슈를 전략적으로 선점하는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다.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 이란 핵협상, 쿠바 국교 정상화 등 그가 최근에 이룬 성취는 대부분 공화당의 반대를 뚫고 이뤄냈다. 공화당이 1월 8일 오바마케어를 무력화하는 법안을 의결했지만 거부권 행사라는 강수로 맞받았다. 쿠바 국교 정상화는 공화당이 금수(禁輸)조치 해제는 여전히 반대하지만 대통령이 할 수 있는 행정명령 수준에서 관련 규제를 풀며 정치적 공간을 확보했다. 앨런 리크먼 아메리칸대 명예교수는 “현 상황이라면 오바마 대통령은 레임덕 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오바마#레임덕#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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