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후보된다니 잠 안와”… 대세론 뒤집기나선 美보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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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美 대선]
[美 보수정치행동회의 총회장 르포]

포트워싱턴(메릴랜드)=이승헌 특파원
포트워싱턴(메릴랜드)=이승헌 특파원
《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대세론에 제동이 걸렸다. 트럼프는 5일(현지 시간) 열린 미 공화당 ‘슈퍼 토요일’ 경선 4개 주 가운데 루이지애나, 켄터키 등 2개 주에서 승리하는 데 그쳤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메인, 캔자스에서 이기며 트럼프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트럼프의 부진은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 공화당 주류가 트럼프 대세론을 막기 위해 총공세를 편 데 따른 것으로 향후 판세 변화가 주목된다. 3개 주에서 열린 민주당 경선에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네브래스카, 캔자스에서 승리해 루이지애나만 건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다시 추격하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후보가 된다고 생각하니 잠이 안 온다. 트럼프가 후보가 되면 나는 친구들과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절망에 빠질 것 같다.”

5일 오전 미국 수도 워싱턴 인근의 메릴랜드 게일로드 컨벤션센터. 공화당의 대표적인 연례 정치 행사로 꼽히는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총회장에서 만난 공화당원 케네스 가빈 씨(45)는 기자에게 흥분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변 공화당원들은 약속을 번복하며 이날 행사에 불참한 트럼프의 실물 크기 사진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내뻗는 등 심한 욕을 하기도 했다. 행사장 주변엔 ‘NEVER TRUMP(트럼프는 절대 안 된다)’라는 팻말이 눈에 띄기도 했다.

열성 공화당원들이 중앙 무대 정치인들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대해 현안에 대해 의견을 듣는 이날 연례행사의 공식 의제는 ‘오바마 케어 들여다보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시대 대처법’ 등이었다. 하지만 행사장에 모인 공화당원들은 온통 트럼프 대세론을 걱정하고 있었다.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트럼프를 겨냥해 한 ‘사기꾼’ ‘3류 연극배우’라는 표현을 따라 하는 사람도 보였다. 우버택시 기사 매슈 스콧 씨(33)는 “트럼프는 미국이 200년 넘게 갈고닦은 정치제도를 한 번에 무너뜨릴 파괴자”라며 “이제라도 ‘반(反)트럼프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공화당 대선 주자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경선 일정을 쪼개 이날 연사로 참석해 ‘반트럼프 전선’에 불을 지폈다. 루비오는 “트럼프가 과연 ‘작은 정부’ ‘자유경제’라는 공화당의 정신과 이념을 계승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반문한 뒤 “그가 우리 당 대선 후보가 되면 에이브러햄 링컨부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까지 이어 온 공화당의 아버지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트럼프 이야기만 나오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우∼” 하고 야유를 보냈다.

CPAC는 이날 행사를 마친 뒤 대선 주자들을 대상으로 ‘STRAW POLL’이라는 비공식 투표를 했다. 참석자 2000여 명이 투표한 결과 크루즈가 40%를 얻어 1등이었다. 이어 루비오가 30%였고 트럼프는 15%에 그쳤다. 결과가 나오자 행사장 곳곳에선 “미국 만세” 등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 열린 ‘슈퍼 토요일’ 경선도 공화당의 이런 기류가 반영됐다. 트럼프는 당초 예상과 달리 4개 주 가운데 루이지애나와 켄터키 2개 주에서 이기는 데 그쳤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캔자스, 메인 주에서 승리하며 강력한 트럼프 대항마로 떠올랐다. 경선 당일 CPAC에 참석해 표를 기대했던 루비오는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하면서 크루즈와의 단일화 압력에 시달릴 처지가 됐다.

이날 경선 결과는 트럼프가 공화당 주류의 총공세에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트럼프가 승리한 2개 주에서도 크루즈를 간신히 제쳤다. 루이지애나에서는 41% 대 38%, 켄터키에서도 36% 대 32%로 3∼4%포인트 차에 불과했다. 반면 크루즈는 트럼프를 크게 이겼다. 캔자스에선 48% 대 23%, 메인 주에선 46% 대 33%였다.

민주당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네브래스카 주와 캔자스 주에서 승리하며 루이지애나에서만 이긴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는 뒷심을 발휘했다.

포트워싱턴(메릴랜드)=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대선#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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