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푸틴’ 12년 독재… ‘터키의 오바마’가 제동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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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서 집권당 과반획득 실패
쿠르드계 정당 10%대 득표 돌풍… 대통령 권한강화 개헌도 위기

“‘터키의 푸틴’이 가고 ‘터키의 오바마’가 온다.”

7일 치러진 터키 총선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터키 언론들이 이같이 보도했다. ‘터키의 푸틴’이라 불리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61·사진)의 12년간 독재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터키 국영 TRT 방송에 따르면 개표가 99.94% 진행된 가운데 AKP는 41%를 얻어 전체 550석 가운데 과반 이하인 259석을 얻는 데 그쳤다. AKP가 단독 정부 구성에 실패한 것은 2002년 이후 처음이다. 공화인민당은 25.1%(132석), 민족운동당 16.4%(81석), 인민민주당(HDP) 13.1%(79석) 등으로 집계됐다. AP통신은 “이번 총선은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개헌에 대한 유권자의 뜻을 묻는 국민투표 성격이 강했다”며 “AKP가 제1당 지위를 유지했으나 사실상 패배한 셈”이라고 전했다.

AKP의 과반 의석 확보 실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쿠르드계 HDP의 약진이다. 비례대표제인 터키 총선에서는 득표율 10% 이상의 정당에만 의석이 배정된다. 만약 HDP가 10% 이하로 득표했다면 AKP는 60석가량을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쿠르드계는 무효표 처리를 우려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왔다.

돌풍을 일으킨 HDP는 인구의 20%(약 1500만 명)인 쿠르드 세력을 기반으로, 대표적 좌파 정당으로 성장했다. 기존 정당이 등한시해 온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폭넓게 제기하며 지지 기반을 넓혔다. 영국 BBC는 “HDP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언어와 종교를 인정하는 자세를 보여 민심을 파고들었다”고 전했다.

셀라하틴 데미르타쉬 HDP 공동대표(42)의 개인적 매력도 통했다. 총선 이후 현지 언론은 “‘터키의 푸틴’이 ‘터키의 오바마’에게 발목을 잡혔다”며 에르도안 대통령과 데미르타쉬 대표 간 대결 구도를 부각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데미르타쉬 공동대표는 약자를 대변하는 면모로 ‘터키의 오바마’라 불려 왔다. BBC는 “데미르타쉬 공동대표가 대중 스타로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는 터키 정계에서 매우 드문 일”이라고 전했다. 또 이달 5일 터키 내 쿠르드족의 중심 도시인 디야르바크르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HDP 후보를 겨냥해 벌어진 폭탄 테러도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최근의 불황도 민심이 여당에 등을 돌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최근 터키에서는 경제성장률이 2.9%로 주저앉고 실업률이 3년 만에 10%를 웃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르도안 대통령 일가의 사치가 자주 구설에 올랐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지난해 말 완공된) 대통령궁에 비행기와 메르세데스 승용차, 황금 변기가 있다”며 ‘황금 변기’ 논란을 제기해 성난 민심에 불을 지폈다.

AP통신은 “야권이 모두 연정을 거부하겠다고 밝혀 조기 총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며 “대통령 권한을 크게 확대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개헌 추진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고 전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터키#푸틴#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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