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냉전시대’ 접어든 국제질서…한국은 어떤 외교 펼쳐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4일 15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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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과거 명청(明淸) 전환기에 어떤 외교를 펼쳤으며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 되새겨야한다”.

중국 칭화(靑華)대 옌쉐퉁(閻學通) 당대국제관계학원 원장이 올 초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중국 관리나 전문가들이 잘 드러내놓고 하지 않는 발언이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국의 속내를 분명히 보여주는 말도 없다.

현재 한국 외교가 시험대위에 놓인 것은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냉전 체제가 끝난 뒤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던 시대가 기울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국과 전략적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의 대국굴기(倔起·떨쳐 일어남)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Pivot to Asia)’가 맞닿는 절단면상에 놓여 어려움이 더욱 크다.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냉전 체제는 1990년 전후로 구소련이 해체되고 동구 공산권이 붕괴하면서 사라졌다. 러시아는 연방 해체로 미국과 경쟁할 여력이 없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정점으로 미국 주도 세계 질서에 편입돼 경제성장에만 몰두했다. 한동안 미국의 독무대였던 국제질서가 급변한 것은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부른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미국은 휘청거리는 사이 중국은 매년 평균 9% 이상의 높은 경제 성장을 달성하면서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이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주요 섬에 대한 영토 주권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주변국과의 갈등을 키웠다.

탈 냉전 이후 ‘소비에트 제국에서 2류 국가’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했던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강한 러시아’를 내걸고 장기집권을 시작하면서 서방과 신 냉전을 벌이고 있는 점도 큰 변화이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공화국 합병은 2차 대전 후 유럽의 국경선을 다시 긋는 ‘시대를 역류하는 사건’이었다. 미국 서유럽 국가와 러시아의 ‘신 냉전’은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제약 요소가 되고 있다.

유럽에 불고 있는 ‘신 냉전’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 대전 전승 70주년 기념식에 한국의 국익만 놓고 본다면 박 대통령이 참석해 극동에서의 양국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도움이 되지만 결국 불참을 결정을 한 것은 미국 서유럽과 공동보조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제질서는 미-중, 미-러, 중-일 등 곳곳에서 영토 과거사 및 경제 체제 주도권 등을 놓고 대립함과 동시에 사안에 따라 협력을 한다는 점에서 소규모 전쟁까지 벌이던 냉전 시기와는 확실히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한국도 큰 흐름의 변화와 특징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신 실리주의’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직보다는 유연한 대처, 총론이 아니라 각론위주의 대응, 과거보다는 미래, 방어보다는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베이징(北京)의 한 소식통은 “극동에서 한-러 협력이 강화되면 이는 중국 북한 일본 모두에 대해 모두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한-러 협력의 또 다른 기회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달라진 국제질서에 적응하는 각국의 ‘신 실용주의’ 외교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대표적이다. 일본 한국과 함께 미국의 주요 군사동맹국인 호주와 중국 견제를 위해 20년 만에 다시 미군 주둔을 허용한 필리핀이 최근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 회원국에 가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달라진 국제환경에 유연한 대응을 하는 것은 전통 강국들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러시아 제재에서는 미국과 굳건하게 공동보조를 취하면서도 중국의 AIIB에는 가입해 독자적인 실리외교를 추구하고 있고 인도는 중국과의 국경 분쟁을 의식해 미국산 전투기를 구입하면서도 AIIB나 브릭스가 창설하는 신개발은행(NDB)에서 중국과 보조를 맞춰 미국의 금융패권에 맞서고 있다.

미중(美中)도 예외가 아니다. ‘아시아 재균형’(미국)과 ‘접근 억제 전략’(중국)으로 충돌하면서도 전략경제대화 채널을 유지하는 등 ‘신형 대국관계’(중국 표현) 구축을 시도 중이다. 중국과 일본 역사 영토 갈등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과 지난달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는 등 해빙을 모색하고 있다.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인 김흥규 교수는 “호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미-중 사이에서 사안별로 고민하는 국가들과 ‘중견국 협력체’를 구축해 지혜를 모으고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홀로 대응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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