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둥회의 60주년…한일 역사논쟁을 다시 생각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6일 22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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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주년을 맞은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가 한일 양국에서 주목을 모았다. 22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짧은 연설이 29일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과 8월 ‘전후 70주년 담화’ 내용을 예측하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10년 전 반둥회의 50주년 회의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무라야마담화를 그대로 답습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국가들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것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반둥회의에서 식민지 지배와 사죄를 언급하지 않았다. 침략과 반성에 대해서도 반둥회의에서 채택된 평화 10원칙에서 ‘침략 또는 침략의 위협, 무력행사에 의해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항목을 인용하고 ‘이전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그것(10원칙 중 아베가 인용한 원칙)을 지켜나갈 것을 맹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총리 관저의 담당자는 이 표현을 몇 번이나 주의 깊게 검토했을 것이다. 아베 총리도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반영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표명한 것처럼 아베 총리는 일본이 ‘이전 대전(大戰)의 깊은 반성 위에 평화국가로써 걸어왔다’는 것과 ‘그 자세는 이후에도 변함없다’는 것만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아베 연설에 대해 중국은 그렇게 강하게 반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 주석이 ‘중일 관계는 어느 정도 개선됐다’고 말한 점이 인상 깊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는 한중에 상당한 온도차가 있는 것 같다. 5개월 전 중일 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시 주석은 시종일관 미소를 지었다.

29일 미 의회 연설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에게 우수한 스피치 라이터가 있다면 일본 해군의 진주만 공격, 그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행했던 역사적인 연설 등을 상기시킨 뒤 제2차 세계대전과 그 당시의 행위에 대해 보다 솔직히 ‘깊은 반성’을 표명할 것이다.

또 전후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국의 관용과 원조가 일본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원천이었음을 강조할 것이다. 미일의 화해가 ‘과거의 적’을 ‘현재의 친구’로 만든 점을 언급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토대로 더욱 견고한 미일 동맹을 구축해 국제사회에 공헌할 것을 맹세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하면 아베 총리는 식민지 지배를 언급하지 않고 거기에 대해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원래 미국 의원과 국민을 상대로 식민지 지배를 말할 필요가 없고 그들도 일본에 ‘사죄’를 요구하지 않는다.

반둥회의와 미 의회 연설은 그대로 전후 70주년 담화로 이어질 것이다. 아베 총리 자신이 “과거와 똑같은 단어를 포함시킬 것이라면 담화를 낼 필요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담화에 식민지 지배와 ‘마음으로부터의 사죄’가 포함될 가능성은 낮다.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무라야마 담화를 전체로써 계승한다’고 계속 말할 것이다. 이는 매우 교묘한 방법이다. 왜냐면 (8월에) 70주년 담화 문제가 지나가면 다시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를 표명해야 하는 행사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내 혐한 분위기에서 보면 일본 국내에는 한국이 처한 궁지를 속이 후련하다고 여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정치에 큰 곤혹을 치르고 있는 박근혜 정권이 그런 상황을 순전히 받아들이고 역사논쟁을 끝낼 리가 없을 것이다. 올해 안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려도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다고도 생각하기 힘들다.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둘러싸고 정면에서 충돌하는 게 아니라 우회하고 문제를 최소화해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면에서 마주보고 대처하는 게 아니라 옆으로 서서 손을 잡고 공통의 목표를 지향해야만 한다. 지금은 그것을 위해 뭐가 필요한지를 생각할 때다.

오코노기 마사오 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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