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민문제 불지핀 퓰리처상 기자… 불법체류 고백 3년만에 한때 구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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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입국 취재갔다가 공항서 체포… “법정출두” 서약서 쓰고 풀려나

벌써 21년째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살고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이 문제로 검거된 적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15일 미국 텍사스 주 매캘런 공항에서 국경수비대에 체포됐다 하루도 넘기지 않고 풀려났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불법 이민자’로 꼽히는 호세 안토니오 바르가스 씨(33) 이야기다.

필리핀에서 태어난 그는 열두 살 때인 1993년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가 사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16세 때 운전면허를 따려다 자신의 신분증이 위조된 것을 안 이후 신분을 감추고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기자가 된 그는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 취재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유명 기자가 된 바르가스 씨는 2011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을 통해 자신이 불법 이민자라고 밝히면서 11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내 장기 불법 체류자의 인권문제를 공론화했다. ‘디파인 아메리칸(Define American·미국인을 정의하라)’이라는 시민단체도 결성했다.

그의 문제 제기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만 16세 미만에 입국해 5년 이상 계속 체류한 15∼30세 불법 이민자의 추방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불법 이민자에게 시민권 취득의 기회를 주겠다는 이민개혁법안(드림 액트) 추진 계획도 발표했다. 시사주간 타임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바르가스 씨를 표지 모델로 등장시켰다. 자전적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큐멘티드’도 직접 제작, 발표했다.

그의 이런 활약은 16세 미만 중남미 소년의 대규모 밀입국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를 만났다. 그와 같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나홀로’ 미국 국경을 넘다 붙잡힌 중남미 미성년자는 지난해 10월 이후 5만7000명을 넘어섰다.

야당인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며 정치공세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9일 불법 입국 미성년자 수용시설을 짓고 국경 경비를 강화하겠다며 37억 달러의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으나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이 모든 사태의 방아쇠를 당긴 바르가스 씨가 텍사스 국경지대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체포된 것이다. 수갑이 채워진 채 공항 인근 구금시설로 호송됐던 그는 법정에 출두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풀려났다. 그는 지난 3년간 미국 내 40개 주를 여행했지만 한 번도 체포되지 않았다.

그는 지난 주말 자신의 트위터에 “나 같은 불법 이민자가 비행기나 차로 텍사스를 떠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11일 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기고한 그의 기사 제목은 ‘국경에 묶여(Trapped on the Border)’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퓰리퍼상#공화당#바르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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