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 같은 은퇴의 변(辯)을 남기고 의정생활에서 물러나는 의원들이 줄을 잇고 있다. 현재까지 상원과 하원에서 의원 34명이 불출마를 선언해 역대 최대 규모에 이르렀다. 선거 일정이 가까워지면 불출마 의원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위원회 중 하나인 세입세출 위원회를 6년 동안 이끌어온 공화당의 데이브 캠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24년의 의원 생활을 접고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 그가 불출마를 결심한 것은 공들여 추진해온 세제 개혁 법안이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으로 처리 자체가 불투명해졌기 때문. 법안을 공동 추진했던 맥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도 주중 미국대사로 임명되기는 했지만 이에 앞서 지난해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7선의 마이크 로저스 하원 정보위원장 역시 지난달 28일 “의원 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라디오 진행자가 되겠다”면서 올 연말 의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앞서 2월에는 벅 매키언 하원 군사위원장과 닥 헤이스팅스 하원 자원위원장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상원에서는 칼 레빈 군사위원장, 톰 하킨 보건교육노동위원장, 제이 록펠러 무역과학교통위원장 등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의원직에서 물러난다.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은 주지사나 다른 의원직에 도전하지 않고 완전히 정계를 떠날 예정이다. 표면적 이유는 가족생활, 나이 등 다양하지만 이들의 은퇴 발표문에는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소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배경 설명이 공통적으로 언급된다. ‘일 안 하는 의회’라는 불명예 속에서 더이상 일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하는 법안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미 의회의 법안 처리 건수는 212건으로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의회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에서 의회의 업무수행 지지율은 사상 처음으로 한 자릿수인 9%까지 추락했다. 1950년대부터 의정생활을 해온 30선의 최장수 존 딩겔 하원의원은 “지금 의회는 더이상 내가 알던 의회가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2월에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들 의원의 은퇴로 미 의회의 갈등 구조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불출마 의원 대부분이 그동안 협상에 주력해온 노련한 중진 의원들이었고 이들의 공백을 협상보다 원칙을 내세우는 초선 의원들이 메우기 때문이다. 불출마 하원의원 26명 중 10선(20년) 이상 의원이 14명이나 되며 상원의원 8명 중 절반도 5선(30년) 이상 의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의원 불출마 러시가 지도력 공백의 악순환을 낳고 있다”며 “갈등 구조에 환멸을 느낀 의원들이 물러나는 길을 택하면서 아무 일도 이뤄내지 못하는 ‘정체(gridlock) 의회’의 오명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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