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돌변… “임금-연금 못줄인다” 재협상안 마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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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새 연립정부가 25일 시작할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와의 구제금융 프로그램 재협상에서 기존의 긴축정책들을 완전히 뒤집는 요구안들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연정이 마련한 재협상안 문건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는 ‘임금과 연금, 공공투자의 축소 없이 (트로이카와 약속한)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적어도 2년 이상 연장하는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또 ‘공공 분야 인력 감원 계획을 철회하고 공공 비용 절감을 중단하겠다’는 방침도 밝힐 예정이다. 그리스는 2월 1300억 유로의 2차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2015년까지 15만 명의 공공 분야 인력을 줄이고 올해만 1만5000명을 해고하기로 했다.

새 연정은 또 △최저임금(586유로) 재검토 △민간 분야에서의 해고를 쉽게 하도록 한 변경된 단체협약 폐지 △실업수당 지급 기간 연장 △체납액이 소득의 25%를 초과할 경우 초과분 체납액은 탕감 △외식산업 부가세 23→13%로 인하 등도 주장할 것이라고 그리스 언론이 보도했다.

이 같은 요구들은 유로존 위기의 큰 향배를 가늠할 스페인의 구제금융 발표(25일)와 독일-프랑스 정상회담(27일), EU 정상회담(28∼29일)을 앞두고 있는 유럽 수뇌부를 당황하게 하고 있다. 2차 구제금융 이후 그리스가 약속한 공기업과 국유 재산 매각, 공공 분야 직원 감소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새 연정이 들고 나온 요구 수준은 ‘구제금융 이행 약속’을 사실상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새 연정의 협상안들은 총선에서 긴축정책 중단과 구제금융 전면 재협상을 내세워 큰 지지를 받았던 제1야당 급진좌파연합(시리자당)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새 연정과 트로이카의 재협상, EU 정상회담이 모두 큰 갈등과 논란 속에서 진행될 것으로 서구 언론들은 내다보고 있다. 재협상의 키를 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핵심 조건들을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강경한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데다 그리스 새 연정의 요구는 재정적자 감축연도 연장 등 어느 정도 조건을 완화해 줄 생각을 가진 트로이카와도 견해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재협상과 EU 정상회담 결과는 그리스 연정과 경제위기의 앞날을 내다보게 할 가늠자다. 그리스의 무리한 요구들이 고도의 협상 전략일 수도 있지만 만약 제대로 관철되지 않을 경우 야당이 주도하는 반정부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고 연정이 초반부터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스의 새 연정은 지난 주말 안도니스 사마라스 총리와 바실리스 라파노스 재무장관이 병원 신세를 지는 등 시작부터 비틀거리는 모습이다. 새 정부는 21일 첫 국무회의에서 각료 연봉 30% 축소 등을 결정하며 야심 차게 출발했으나 사마라스 총리는 다음 날 입원해 왼쪽 눈 각막 박리 수술을 받았고 24일 퇴원했다. 라파노스 장관도 구토와 위통을 동반한 바이러스 감염과 탈진 증세로 같은 날 병원에 입원해 25일 퇴원한다.

한편 EU 정상회담에서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로존 4강 정상들이 22일 로마에서 특별정상회담을 갖고 합의한 ‘경제 위기 극복과 경제 성장을 위한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의 1%(1300억 유로) 투입안’과 재원 마련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특히 유로존 경기 부양을 위한 인프라와 재생산업 투자 등을 위해 유럽개발은행(EIB) 자본금을 확충하는 방안이 중점 논의된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EIB가 100억 유로만 증자해도 대출로 600억 유로, 공동 투자 프로젝트 형태로 최대 1800억 유로까지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며 “이는 경기 부양에 큰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유로존 위기의 해법으로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등 구제금융기금의 재정위기국 국채 직접 매입, 은행 부채 공유를 핵심으로 한 은행동맹 도입, 유로본드 발행안 등에 대해 독일 정부가 여전히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가 27일 파리에서 미리 만나는 것도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그리스#연립정부#구제금융#긴축정책#유로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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