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동성애 다룬 美수녀 책’ 비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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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다양한 담론 반영한 것” 반박

미국 수녀단체와 바티칸 교황청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교황청은 4일 미국 예일대 신학대학원 명예교수인 마거릿 팔리 수녀(사진)의 책 ‘오직 사랑: 기독교적 성윤리의 틀’이 교리에 어긋난다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2006년 발간된 이 책은 성(性)을 주제로 동성애, 자위, 재혼 등의 내용을 다뤘다. 교황청 교리 감독기구인 신앙교리성(CDF)은 이 책이 “교리를 고려하지 않은 내용으로 신앙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발표했다. 신앙교리성은 책 출간 후 수년간 책 내용을 리뷰해 보고서를 제출했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최근 보고서 공표를 승인했다.

팔리 수녀는 이 책에서 여성의 자위 행위가 “도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동성애에 대해서도 “증오와 거부감 섞인 시선이 변해야 하며 동성애자들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 교리와는 달리 ‘합리적인 이유로 인한 이혼’은 “인정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이에 대해 교황청 측은 “동성애와 자위 행위는 자연 법칙에 반하고 근본적으로 질서에 어긋나는 일이며, 이혼 인정은 결혼의 영속성을 강조하는 교리에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팔리 수녀는 “교리를 알리기 위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담론을 반영해 성을 다룬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예일대 신학대학원 학장과 팔리 수녀가 소속된 자비수녀회 대표도 팔리 수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번 충돌은 최근 교황청과 미국 수녀단체가 벌이는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 교황청은 4월 “미국 수녀단체인 여성종교리더십콘퍼런스(LCWR)가 낙태 같은 이슈에 적극 나서면서 교리 전파에는 소홀한 채 가톨릭 신앙과 양립할 수 없는 급진적 여권 신장만 주장한다”며 미국 시애틀 교구에 LCWR 활동의 적절성을 점검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LCWR는 1일 “교황청의 평가는 근거가 없고 우리를 처벌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성명을 냈다. 지난달 보스턴과 시카고 등에서는 LCWR 지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LCWR에는 미국 전체 수녀의 80%인 5만7000여 명이 소속돼 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교황청#수녀#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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