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를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쿠바에 정치적 변화를 촉구한 데 대해 쿠바 지도부가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마리노 무리요 쿠바 국가평의회 부의장은 27일 수도 아바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쿠바에서 정치적 개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26일 쿠바를 방문한 교황이 야외 미사를 집전하면서 쿠바가 ‘새롭고 개방적인 사회’가 되길 기원한 것을 비롯해 쿠바의 정치적 변화를 요구한 것에 대한 답변이다.
무리요 부의장은 “우리는 정치개혁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은 뒤 “쿠바는 경제 모델을 계속 보완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무리요 부의장은 쿠바의 경제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쿠바는 지난 수년간 피자가게 같은 소규모 개인기업을 허용하고, 부동산이나 자동차 구매를 용인하는 등 경제적으로 점진적 변화를 보여 왔다.
교황의 개혁 요구에 대한 무리요 부의장의 반응을 두고 교황 측은 논쟁의 수렁에 빠질 것을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27일 아바나의 혁명궁전에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나 4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 회담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바티칸 대변인은 이날 회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채 “교황은 쿠바가 점진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교회의 역할은 법적 혹은 정치적 사안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쿠바 현지 언론도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만 방영했고 자세한 회담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베네딕토 16세의 이번 쿠바 방문은 과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1979년 폴란드 방문이 동유럽권 민주화의 씨앗을 뿌렸듯이 쿠바에도 ‘민주화의 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번 방문으로 ‘쿠바의 봄’이라는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요한 바오로 2세의 1998년 쿠바 방문은 크리스마스 공휴일 지정 등 일부 변화를 가져왔지만 대부분 경제적이거나 종교적 개방에 관한 것들이었다.
베네딕토 16세는 28일 아바나의 혁명광장에서 수십만 명의 시민이 참석한 대규모 야외 미사를 집전하며 3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날 미사에는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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