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22일 리히터 규모 6.3의 지진이 뉴질랜드 남섬 동북쪽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를 강타한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지난주 기자가 찾아간 크라이스트처치는 아직도 지진 피해를 수습하고 있었다. 나이리 버튼 부시장은 “재건축이 시작된 곳도 있지만 아직은 철거 중이다. 복구의 핵심은 바로 CBD(Central Business District·은행 호텔 등이 몰린 시내 중심지) 재건”이라며 ‘장기간’의 피해수습 과정과 계획을 설명했다.
도심은 여전히 접근하지 못하는 통제구역이다. 도심으로 향할수록 철골을 드러낸 건물이 보였고 건물 내부를 정리하는 주황색 작업복을 입은 인부들이 눈에 띄었다. 철조망으로 막힌 출입통제구역 때문에 차를 돌려 다른 길을 찾는 차량도 있다. 현재 도심의 철거 예정 건물 1550여 채 중 1100여 채의 철거가 마무리됐다. 지면 정리가 끝날 때마다 통행허가 지역을 조금씩 늘리고 있지만 속도는 더딘 편이다. 사고가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새 건물을 올리고 위령비를 세우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지진복구위원회는 지질조사와 위험지역의 분류(지진에 취약한 순으로 레드·오렌지·그린존으로 나눔)도 아직 끝내지 못했다. 로저 서천 지진복구위원장은 9일 “늦어도 6월 말에는 구획 분류를 끝낼 것”이라며 “현재 지질 연구와 관련 실험을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지진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돌이 구르는 길과 갈라지는 지형을 파악해 집 지을 땅을 고르겠다는 말이었다. 뉴질랜드 정부는 도시 재건 예상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잡고 있다. “지진을 막을 순 없지만 안전한 도시를 재건한다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한국인 남매를 포함한 지진 희생자 185명을 위한 추모비나 공원도 아직 없다. 1주기 추모식에서도 추모비 제막 같은 행사는 없었다. 시 측은 “의미 있는 추모장소를 만들기 위해 이름 있는 조각가와 설계자 등을 섭외하며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철거만 끝났지 건축허가가 나지 않은 자리엔 컨테이너들이 올려졌다. 출입이 통제된 철조망 바로 옆 캐셜스트리트엔 알록달록하게 색을 입히고 기하학적으로 쌓은 컨테이너 상가 지구가 펼쳐졌다. 복구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마냥 생업에서 손을 놓을 수 없던 상인들이 지난해 11월부터 조성한 거리다. 카페와 옷가게, 은행과 전자기기 가게 등 30여 개의 임시 매장이 들어선 거리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오간다.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멜로디도 들렸다. 원래 자리에 다시 신발가게를 낸 조이 빅 씨(34)는 “시내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주말엔 400∼500명이 찾는다”고 했다.
통제구역 철조망엔 ‘성당을 구해주세요(Save the Cathedral)’고 쓴 리본이 묶여 있었다. 꽃 모양의 ‘장미 창문’으로 유명한 도시의 상징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의 철거 결정이 최근 내려진 후에 생긴 풍경이다. ‘철거하지 말고 수리하라’며 시민들이 반발했지만 건물의 기반이 심하게 훼손돼 결국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강은지 기자버튼 부시장은 “쇠뭉치로 부수는 철거가 아니라 하나하나 떼어내는 ‘해체작업’을 할 것”이라며 “귀중한 문화재를 최대한 활용해 그 자리에 성당을 다시 지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달랬다. 성당 해체는 서두르지 않고 연말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그때가 되면 크라이스트처치는 본격적인 재건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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