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조작까지… 순위평가 목숨거는 美대학들

  • 동아일보

“랭킹 올라야 기금도 오른다”… 재정난 학교 ‘검은 유혹’ 빠져
입학 예정자들 성적 올리려 SAT 재시험 보게 하기도

미국 캘리포니아 클레어몬트 칼리지의 입학담당관이 최근 성적 조작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는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유에스뉴스)가 매년 선정하는 대학 순위 평가에서 높은 순위에 들기 위해 2005년부터 입학생의 미국수학능력시험(SAT) 성적을 부풀려 유에스뉴스 측에 제출했다고 고백했다.

텍사스의 베일러대는 조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에스뉴스 평가 순위를 올리기 위해 2008년부터 SAT 재시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합격이 결정된 입학 예정자들이 SAT 시험을 다시 치를 경우 300달러의 구내 서점 쿠폰을 지급한다. 성적이 올랐을 경우에는 연 1000달러(약 112만2000원)의 장학금을 4년 동안 지급한다. 지난해 신입생 3000명 중 중 850여 명이 재시험을 치렀고 150명이 성적이 올라 장학금을 받았다. 지난해 재시험 결과 이 대학 신입생 평균 SAT 성적은 1200점에서 1210점으로 올랐고 대학 측은 오른 성적을 유에스뉴스 측에 제출했다. 이 대학의 유에스뉴스 대학 순위는 70∼80위권이다.

이처럼 대학 순위평가에서 한 단계라도 순위를 올리기 위한 미국 대학들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정작 학생들은 대학 순위에 그다지 관심이 높지 않지만 대학 당국은 대책 발굴에 골몰하고 있다고 유에스에이투데이가 5일 보도했다. 이유는 경기침체로 대학 수입이 감소하면서 동문, 이사회 등으로부터 대학 평가 순위를 올리라는 압력이 날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 대학에 발전기금을 내놓는 단체들이 순위를 중요한 기준으로 보는 상황에서 대학들은 순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클레어몬트 칼리지의 경우 성적 조작 결과 지난해 유에스뉴스 인문교양대 순위가 11위에서 9위로 올랐다. 겨우 2단계 상승에 불과했지만 ‘10위권’ 안에 드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대학들에 엄청난 차이로 받아들여진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유에스뉴스 같은 평가 기관들은 순위 결정을 위해 자체적인 설문조사도 실시하지만 절반 정도의 자료는 대학들이 제출하는 학생 성적, 교수 수 등의 통계에 의존하기 때문에 대학들은 자료 조작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대학들의 순위에 대한 집착은 입학생 지원 기준을 가정형편에서 성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 과거 장학금 지원의 최대 조건은 경제 사정이었지만 요즘은 성적 우수 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급이 급속히 늘고 있다. 2010년 미국 4년제 대학의 총장학금 112억 달러 중 50% 이상이 성적 기준에 따라 선발된 학생에게 지급됐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체 장학금의 3분의 2는 가정형편이 불우한 학생에게 지급됐다.

하지만 정작 미국 입시생과 부모들이 대학을 고를 때 대학 순위는 학비, 학교 위치, 학교 규모 같은 기준보다 뒤로 밀린다(지난해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대학연구소 조사). 교육연구단체 에듀케이션 컨서번시의 로이드 태커 설립자도 “대학 순위에 민감한 학생들은 상위 10∼15%이며 나머지 학생들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대학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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