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술탄 왕세제 사망… 보수강경 나예프 승계 유력

  • 동아일보

‘아랍의 봄’에 거센 역풍 우려… 튀니지 前대통령 망명 허용
바레인 시위때 파병도 주도… 민주화 요구 적극 차단할 듯

사우디아라비아 압둘라 국왕(87)의 1순위 왕위 계승자가 사망하고 보수 반개혁 성향의 인물이 후계자로 지명될 예정이어서 ‘아랍의 봄’의 도미노 차단에 부심하고 있는 사우디의 앞날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사우디 왕실은 올 6월부터 미국 뉴욕 ‘장로교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왕세제(王世弟·왕의 후계자로 지명된 동생) 술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가 22일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공식 나이는 80세지만 실제로는 85세로 추정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은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 사우디에 보수 반개혁 바람 부나

사우디 왕실은 현 압둘라 국왕이 고령인 데다 여러 차례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수일 내로 후임 왕위 계승자를 지명할 예정이다. 후임자로는 술탄의 친동생으로 34년간 내무장관을 맡고 있는 나예프(77)가 유력하다고 AP통신 등 외신은 전했다. 사우디 왕실은 이번 주 왕의 형제와 사촌 등 34명으로 구성된 ‘충성위원회’를 소집해 후임 왕세제 책봉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나예프 장관은 아랍권에 부는 ‘재스민 혁명’에 대해 강경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월 수니파가 집권하고 있는 바레인에서 민주화 시위대를 진압할 때 시아파 종주국 격인 사우디가 군대를 보내 지원한 데는 나예프 장관의 역할이 컸다고 외신은 전한다. 그는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에 대해서도 지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1월 재스민 혁명으로 축출된 진 엘아비딘 벤 알리 튀니지 전 대통령을 사우디로 피신하도록 했다.

압둘라 국왕도 미국 정부가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의 퇴진을 압박할 때 직접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무바라크를 모욕하지 말라”고 항의할 만큼 민주화에 소극적이다. 이런 가운데 나예프 장관이 승계하면 아랍 민주화에는 더욱 역풍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예프 장관은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해서는 강력한 진압 의지를 나타내는 등 친서방 미국 외교 중시 노선을 버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개혁적이고 아랍 민주화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성향 때문에 그가 왕위에 오르면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나예프 장관은 사우디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15년부터 지방정부 선거에 한해 여성의 참정권을 부여한다’는 제한적 민주화 조치에 반대하고 있다.

○ 사우디 ‘형제 승계’ 시련 맞을 수도

술탄 왕세제의 사망으로 사우디의 독특한 형제 승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우디는 7세기 초 강력한 신정국가를 세웠다가 군소 부족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1927년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에 의해 단일 국가로 통합된 후 1932년 왕조 국가를 세웠다. 압둘 왕은 최소 22명의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45명 중에서 왕을 승계토록 했으며 1953년 그가 사망한 후 장자인 사우드가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이복동생 파이살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 왕족회의 결정을 통해 쫓겨났다. 이어 왕위에 오른 파이살은 조카에게 피살됐다.

5대 국왕 파드는 1992년 형제가 아닌 아들 승계도 가능토록 하는 법률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 자신이 23년간 집권하면서 이복동생인 현 압둘라 국왕은 2005년 81세가 돼서야 왕위를 물려받았다. 22일 사망한 술탄 왕세제는 1962년부터 국방장관을 맡으며 왕위 승계를 기대했지만 2005년 왕세제로 지명될 때는 74세였다. 초대 국왕이 죽은 지 거의 60년이 되는데도 2세인 아들들 사이에서 왕위가 계속 승계되고 있는 것이다. 형제 승계로 ‘고령자 승계’가 계속되는 사우디 왕조가 시련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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